에드바르 뭉크_ 절규, 1893년
갑자기 갱년기가 찾아왔다. 순식간에 온몸이 더워지면서 땀구멍이 활짝 열렸다. “더워, 더워”를 외치며 선풍기 버튼을 눌렀다.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땀을 닦았다. 심호흡을 하며 겨우 평정을 되찾았다. 갱년기? 코웃음을 치며 나에게는 오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인격체가 내 위에 덧입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갱년기’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아이들은 ‘사춘기’라는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중1 딸아이가 외출을 한다. 친구들과 롯데월드도 가고, 쇼핑하러 홍대도 갔다. 틈만 나면 엄마 옆에 와서 손을 만지던 아이가 친구들과 SNS를 주고받고, 영상 통화하느라 방 안에만 있다. 파우치에는 나보다 더 많은 색조화장품으로 가득하다. 등교 전, 외출 전 방에서 나오는 아이의 얼굴을 뽀얗게 변해있었다. 이 정도면 귀엽지! 생각하며 웃으며 배웅을 해줬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친구들과의 소통은 일상생활에 피로감을 이겨낼 만큼 달콤한 사탕. 아이는 점점 짜증이 늘었고, 해야 할 공부를 하지 못한 채 마음만 무거워졌다. 결국 포기. 학원을 가겠다고 나선 발길은 가까운 쇼핑센터로 향했다. 자기 할 일 척척 해내던 성실했던 아이가 어딘가로 꼭꼭 숨어버렸다. 내가 알던 딸아이는 원판이 되어, 매번 새로운 색으로 덧입혀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새로운 자아를 선보이는 딸아이의 세상이 낯설었다.
우리는 서로 혼돈의 세상에 서 있었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안아주고 다독거려줘야 함을 느꼈다.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했다. 아이는 다니던 학원을 그만뒀다. 난 이제 좀 알 거 같은 ‘가야금’ 연주를 멈췄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 생긴 시간,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에게 우선 쉬라 했다. 매일 바쁘게 살던 아이에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는 건 덜컥 겁이 나는 일이었을까?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절규’였다.
함께 도서관을 갔다. 난 무인 반납과 대출 처리를 하고, 책을 정리하며 봉사자로서 할 일을 했다. 아이는 서가를 두리번거리다 책을 꺼내 읽었다. 다른 날에는 공부거리, 일할거리를 가지고 도서관에 갔다. 아이는 공부할 문제집을 펴고, 나는 노트북을 켰다. 10분쯤 지났을까? 아이가 꾸벅꾸벅 졸았다. 그동안 얼마나 피곤했을까? 안쓰러웠다. 엎드려서 좀 자라고 했다. 함께 평일 공연을 보러 경기아트센터에 갔다. 공연장 입장 전 먹는 아이스크림에 아이는 싱글벙글. <아시아 댄스페스티벌> 공연을 보고 온 날, 몽골과 카자흐스탄 춤 중 특징적인 동작만 연습해 가족 앞에서 보여줬다. 덩달아 오빠도 덩실덩실 춤을 췄다. <피아노페스티벌 오프닝 콘서트>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는 함께 간 외할머니와 지휘자의 포즈를 흉내를 내며 함께 웃었다.
매월 1회 도서관에서 <양육자와 함께 하는 예술 활동>으로 재능기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가족’을 목표로 진행하는 <예술 마주하다>, 드디어 나와 아이도 마주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 양육자(엄마) 3명과 7세부터 14세까지의 아이들 6명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10월 31일 핼러윈데이에 맞이해 뭉크의 <절규>를 마주해 보았다. <절규>를 보며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자유롭게 글 쓰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한 명씩 돌아가며 그림과 글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매와 함께 참여한 양육자가 “그림 속 주인공처럼 힘들 때 엄마가 도움이 되기를 바래…….” 글을 읽어 갈 때, 딸아이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휜 거. 기괴함. 별로 느끼고 싶지 않다. 포크로 유리그릇 긁는 소리. 드림코어-말이 되는 듯 안 되는 듯 한 어딘가 기괴한 느낌.’
수줍어할 줄 알았던 아이가 발표순서가 되자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의 글에 부연설명을 붙여가며 담담하게 글을 읽었다. 정말 그림 속에서 ‘끽, 끽!’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드림코어(DREAM CORE)’는 익숙하지만 몽환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으로 아름다움, 향수, 괴리감, 위화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에스테틱(사진, 영상 등 스타일)을 말한다. 뭉크의 <절규> 그림에 표현된 휘어지는, 곡선처럼 표현된 하늘과 피오르*는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성> 작품 속 흐르는 듯한 시계로 연결되었다.
예술을 마주하며, 나를 마주하고, 아이와 마주했던 시간. 아이는 즐거웠다며, 만족스러워하며 웃었다.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던 뭉크는 한가지 작품을 핸드 컬러드 판화* 등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었다. 혼돈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아이와 나는 지금 새로운 버전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보다 더 단단해지고 있다.
*피오르(Fjord)-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이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죠. U자형으로 깊숙이 들어간 협곡 같은 바닷길,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리고 빙하가 만든 웅장한 지형이 특징이다.
*뭉크의 핸드 컬러드 판화(unique by Munch hand-painted works based on a print) - 판화 위에 작가가 직접 채색하여 작품의 독자성을 부여한 것으로 뭉크가 최초로 시도하였으며 매우 혁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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