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보나르_ Children Playing in the Snow ,
캄캄한 밤이 하얗게 변했다. 집에 있던 아이들을 바깥으로, 밖에 있던 어른들을 집으로 향하게 하는 마법 같은 밤이다. 난 어른의 몸을 한 아이가 되었다. 마음은 거리에 나가있는데, 내일까지 제출할 서류로 꼼짝없이 컴퓨터 앞이다. 잠깐 창가에 가 밖을 내려다보았다. 살랑살랑 내리는 눈은 도시의 소리를 야금야금 먹으며 땅 위에, 나무 위에, 건물 위에 자리 잡았다. 길이 한적하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는 아이들과 보호자(어른) 몇 명이 함께하며 눈을 만끽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 직원들은 빗자루를 들고 눈길을 쓸었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검정선을 만들며 목적지를 향했다.
“아! 좋다. 첫눈이다!” 어두운 집 안은 설렘 가득한 나의 외침만이 메아리쳤다.
‘카톡!’ 문자가 왔다. 아이들이 보낸 눈 사진이 도착했다. 첫, 눈. 나만 설레는 게 아니었나 보다. 눈 오는 날의 풍경 사진은 아이의 감성도 담고 있었다. 서론, 본론, 결론이 명확한 걸 좋아하는 아들은 아무도 밟지 않은 골목길의 첫눈이 담겨있었다. 계절의 낭만을 즐기는 딸은 나무 위에 소복이 쌓인 첫눈,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은 첫눈을 담았다. 평소 귀가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한 딸은 날 보자마자 나뭇가지에 쌓여있던 눈이 정말 예뻤다며 재잘재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여보~~ 빨리 와요. 눈 구경 나가요.」 전송.
다시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다. 서류 항목에 맞춰 한 칸 한 칸 써 내려가며 지난 2년 동안 내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았다. 유치원에서 일했던 시간들은 나의 밑거름이 되어, 문화 예술과 만나 새로운 삶을 주었다. 영아 예술 수업부터 어린이, 초등학생 문화 예술 수업까지 나에게 ‘아이들’은 특별한 존재임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추억 속 아이들부터 오늘 함께 한 아이들까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눈 오는 날이면 아이들도 들썩들썩 나도 뜰썩 뜰썩거렸었지. 한바탕 눈 놀이하고 들어오면 모두 발그레한 볼로 웃음꽃이 만발했었다. 눈에 젖은 신발에 어지럽혀진 현관도 축축해진 장갑과 양말도 눈 오는 날엔 다 용서됐던 겨울.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어서 서류를 쓰자!
그것도 잠시, 퇴근길 남편은 깜찍한 꼬마 눈사람을 데리고 왔다. 어쩔 수 없네. 분리수거해야겠네. “엄마 아빠 데이트하고 오세요.”외치는 아이들에게 남편도 한마디 하며 날 따라나섰다.
“너희들, 엄마 같은 와이프 만나라. 아빠 같은 신랑 만나라.”
하얗게 깔린 화이트 카펫 위에는 썰매가 지나갔는지 맨들맨들한 길이 생겼다. 더운 여름 싱그러운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느티나무는 쭉쭉 뻗은 나뭇가지를 자랑하며 은빛 옷을 입었다. 까만 밤에 만난 하얀 눈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맨발에 크록스를 신고 첫눈 맞이를 해 준 남편의 모습에 이십 대 우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맨발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나와 함께 눈을 밟았던 당신이 나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꼬마 눈사람이었다.
눈 오는 날이면 다 함께 무장하고 나가 눈을 즐겼는데, 십 대 중반의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눈 오는 날을 즐기고 들어왔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줄 사진이 도착했다. 눈 위에 누워 천사 날갯짓을 하며 환하게 웃는 조카들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눈 위를 뛰노는 흰둥이 같았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눈 오는 날의 풍경은 비슷한 잔상을 남긴다.
눈이 쌓인 길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피에르 보나르의 <Children Playing in the Snow, 1907> 작품. 1900년 초 프랑스의 눈 내린 거리 모습은 2025년 우리 눈에 비친 동네 풍경과 닮았다. 아들이 보내준 고요한 길과 딸이 보내준 하얀 라인을 뽐내는 나무들이 있다. 내 눈에 들어온 아이들과 곁을 지키는 보호자(어른) 그리고 눈 치우는 어른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 나도 같이 놀아도 돼?”
“그럼,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하나 둘 셋 하면 던지는 거야!”
앙티미스트*(친밀주의자, 내밀주의자)라 불린 보나르가 자신이 경험했던 삶에 상상을 더해 그려낸 눈 내린 날의 일상은 내 삶과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멋쟁이 모자에 판초를 입은 아이도 곧 눈과 하나가 되겠지?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처럼.
*Intimism(앙티미즘) 19세기 후반~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발전한 예술 운동. 일상적이고 사적인 가정 내부의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함. 앙티미스트는 앙티미즘 화풍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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