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애희 Aug 18. 2024

[전직유치원쌤의 그림보기]로댕_다나이드_그림 에세이

깎다가 마주한 조각(2차퇴고)

나의 힐링_ 연필 깎기

무념무상 연필 깎기

쫑알쫑알 참새처럼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떠난 교실은 고요함을 넘어 적막함마저 느껴졌다. 난 이 ‘적막함’이 참 좋다. 유치원 하루 일과 중 혼자만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아이들이 하원한 직후 5분 정도의 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고요함’은 나에게 달콤한 선물이다. 짧은 휴식 후 이내 몸을 움직였다. 바퀴가 달린 교구장을 밀어 한쪽으로 치웠다. 책상 위에 의자를 뒤집어서 올리고, 낮은 책상은 세웠다. 청소를 위한 나만의 최적화된 동선을 만들었다. ‘아! 여기 있었구나.’ OO이 잃어버렸다고 한 종이접기 작품이 교구장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깍두기를 여기에!’ OO이 먹기 싫다고 했던 깍두기가 교구 쟁반 옆에 살며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림 그리던 아이들이 있던 책상 위에는 지우개 가루들이 한가득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 흔적들을 남겨두고 갔다. 교실 바닥 전체를 빗자루로 쓸고, 책상과 교구장을 닦았다. 청소를 하는 중간마다 짧아진 색연필을 빈 통에 모았다. 청소가 마무리되면 빈 통은 어느새 색연필로 가득 찼다. 어떨 때는 색연필을 모으는 통이 하나 더 추가됐다. 교실 안에 가지런히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았다. 드디어 청소하며 흘린 땀을 식힐 시간이 돌아왔다. 쓱, 쓱, 쓱, 쓱! 사무용 칼이 박자에 맞춰서 움직였다. 짧아진 색연필들을 나무 옷을 조금 벗고, 예쁜 빛깔들을 내밀었다. 아이들의 손에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 색연필들, ‘오늘 고생했어.’ 토닥이며 제자리에 가져다 뒀다. 잘 깎여진 색연필들로 아이들은 ‘무엇을 그릴까?’, ‘무엇을 꾸밀까?’ 무척 궁금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쓱, 쓱, 쓱, 쓱! 20년 정도 지난 지금도 우리 집에서는 색연필 깎는 소리가 들린다. 은빛 기차 모양의 연필 깎는 도구가 있지만, 난 여전히 색연필을 사무용 칼로 깎는다. 유치원 교사 시절 연필을 깎던 습관은 이제 나의 힐링 시간이 되었다. 작은 칼로 색연필을 깎다 보면 잠시 무념무상이 된다. 잠시 머리가 멈춘다. 몸에 새겨진 움직임은 색연필을 깎고, 제자리를 찾아 가지런히 놓는다. 좋아하는 색을 찾아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며 색연필들을 바라보니 심장이 작은 쿵쾅거림으로 설렜다. 

다나이드 La Danaïde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오귀스트 르네 로댕도 차갑고 단단한 대리석을 깎았다. 조각가의 손길에 깎이고 다듬어진 <다나이드(La Danaïde), 1889년경>는 점점 창백해졌다. 코끼리의 엄니 '상아'처럼 하얗다 못해 투명해진 그녀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돌 위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 ‘그녀의 등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려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고 싶다.’ ‘하얀 눈처럼 점점 녹아 사라질 것 같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주고 싶다.’ ‘모든 걸 다 안고 희생하고 있는 그녀에게 “선녀처럼 훌훌 털고 날아가세요!” 라며 외치고 싶다.’ 순식간에 그녀 곁에 가서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난 다시 다나이드를 찾아가 내 마음을 더 표현해 보았다. 차가운 달빛을 머금은 다나이드, 달에 사는 선녀 같은 그녀에게 ‘월궁항아’라는 다정한 이름을 선물했다. 쓸쓸한 달빛이 흐르는 캄캄한 밤, 외로움이 가득한 은하수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그러고선 차가운 달 속에 그녀를 꽁꽁 묶었다.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월궁항아’는 웬일인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 단지 기다릴 뿐이었다. "월궁항아여!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애타는 내 마음을 아는지, 어디선가 애잔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아름다운 ‘월궁항아’지만, 혼자 있는 것은 외로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내 마음을 함께 나눌 사람이 간절했을 것이다. "월궁항아여!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게 있습니다." 나는 달 항아리를 준비했다. 달 항아리는 그녀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도 들어줄 것이다. “릴케의 시 한 구절처럼 ‘월궁항아’ 당신도 따스한 봄을 맞이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예술가의 깎기

조각가 로댕은 <다나이드> 조각상에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다나이드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나는 예술가의 깎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로댕은 그리스 신화 속 다나오스 왕의 딸 다나이드,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퍼 나르는 형벌을 받는 다나이드의 모습을 조각했다. 끝없이 노력하지만 벗어날 수 없기에 더 절망하는 여인 다나이드는 더 이상 신화 속의 존재가 아닌, 조각이라는 실체로 나에게 다가왔다. 로댕의 조각 세계에 큰 영향을 줬다는 르네상스 시기의 조각상들도 궁금해졌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 작품을 찾아보았다. 역동적인 <다비드> 조각상은 미술 교과서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만났다. 특히, 그중 <피에타>, <모세> 조각상을 처음 마주한 나는 섬세한 깎기 실력에 감탄했다. 미켈란젤로의 손길에 자식을 잃어 슬픈 엄마 ‘동정녀 마리아’와 위엄 있는 ‘모세’가 살아난 듯했다. 예술가들은 깎는 과정, 조각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아무리 딱딱한 대리석이라도 예술가의 손길에 깎여지고 다듬어지는 동안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담기는 듯하다. 이렇게 조각품 안에 깃든 예술가의 혼은 생명력을 갖고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게 아닐까? 

미켈란젤로 <다비드> <피에타> <모세>
효진샘의 합평_살롱드까

프랑수아 오귀스트 르네 로댕(1840~1917)_프랑스_다나이드 

전애희 2024.08.18.2차퇴고 / 2024.07.30.1차퇴고

#프랑수아오귀스트르네로댕 #로댕 #프랑스 #다나이드 #LaDanaïde #미켈란젤로 #조각 #그림으로글쓰기 

#그림에세이 #살롱드까뮤 #공저모임 #퇴고 #합평 #연필깎기 

매거진의 이전글 [전직유치원샘의 배움] 나는 배우다_연극수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