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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적기업 불나방 Jun 12. 2020

08  채용 비리자는 누구인가

사회적기업이라고 해서 깨끗한 건 아니죠.



1


  "OOO 씨는 저희가 뽑겠습니다."

  "면접 전인데 벌써 결정하셨어요?"

  "예, 결정했습니다.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아, 예......"


  H는 '이건 채용 비리잖아.'라고 생각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채용 비리'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점들이 있었다. 옆에 앉은 면접관이 면접 전 지원자들의 이력서, 자기소개서, 추가 제출 서류를 검토한 결과, 다른 지원자들의 면접 점수를 다 더해도 'OOO'의 점수가 높기 때문에 이 사람을 뽑는 것을 미리 결정할수 있다. 그리고 면접이 끝나고 'OOO'을 뽑지 않을 수도 있다.

  

  '면접이 끝난 후 면접 진행 관계자에게 지원자들의 서류를 미리 요청한 면접관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H는 이것이 '채용 비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면접장에 와서는 'OOO'을 뽑겠다는 면접관이 지원자들의 서류를 검토하지는 않았다. H와 이 면접관은 함께 면접장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황이 채용 비리인지 아닌지 결정한 다음, 다른 3명의 면접관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H에게는 없었다. H의 앞에는 지원자들이 제출한 이력서, 자기소개서와 경력증명서, 자격증 등 서류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뒤로 지원자들이 앉을 3개의 의자가 보였다.


  '내가 이 자리에 면접관으로 앉아 있어도 될까.'


   H는 지원자들의 서류를 미리 검토하는 시간을 갖지 않은 자신을 무척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2

  

   면접관들이 자리를 잡은지 10여 분이 흘렀다.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면접 진행 요원이 면접의 시작을 알렸다.


  ' 번째 서류가 왼쪽에 앉은 사람 것인가...... 두 번째 서류가 그 옆 사람...... 순서대로 보면 되는 건가. 어? 이름이 다르잖아.'


  "명단에서 두 번째 분은 안 오셨어요."


  면접 진행 요원의 도움으로 H는 위기 상황을 넘겼다. 다행히 지원자들에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왼쪽부터 1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H는 다른 면접관의 질문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자기소개를 들으며 면접자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그들이 제출한 서류를 부랴부랴 살폈다.


  "저희 조직에 지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민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관련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고 말씀해주세요."

  "공통 질문드리겠습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이 한 달에 2~3번 정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하고 싶으신 말 있으시면 해주세요."


  의미 있는 질문으로 지원자들의 역량을 파악하여 조직에 적합한 인재를 채용하는 면접관. H가 면접날 아침 상상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정반대에 가까웠다. H는 자신이 보고 있는 서류가 지금 앞에 있는 지원자의 것인지 확인하기에도 바빴다. 확인을 마치고 나면 H는 매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각 지원자에 맞는, 그 지원자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하지 못했다. H에게는 그런 역량이 없었다.

 

  뻔한 질문으로는 지원자들의 역량을 파악할 수 없었다. 다른 면접관들의 질문으로도 지원자들의 역량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역량 있는 면접관은 없었다.


  역량 있는 지원자를 뽑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면접관들이 있어야 했다.




3


 "네, 잘 들었습니다."


  지원자들의 답변이 끝나고 H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지원자들의 답변을 하는 동안 H는 면접 심사표를 찾고, 지원자들의 점수를 적어야 했다. 지원자들의 대답을 귀담아들을 여유, 면접관이 갖고 있어야 할 역량 H에게 없었다.


  '심사표가 어디 갔지? 저 사람이 12번인가. 맞나?'


   H는 지원자들의 대답을 귀담아듣지도 못했고 면접 심사표에 점수도 제때 적지 못했다. H의 면접 심사표는 면접자들의 서류에 덮여 가장 아래에 있다가 지원자들이 나가야 잠시 빛을 볼 수 있었다. 지원자들이 들어오면 다시 가장 아래로 위치했다. H는 지원자들의 대답을 들으며 매번 심사표를 찾아 헤맸다.


  "마지막 조입니다."


  마지막 조의 면접도 이전과 다른 것은 없었다. 면접관들의 같은 질문과 지원자들의 비슷한 대답으로 면접은 끝이 났다. 그제야 H는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옆에 앉아 있는 'OOO'을 뽑겠다던 면접관의 여유로운 얼굴이 보였다.


  "다들 결정하셨어요? 저희는 아까 말한 대로 OOO 씨 뽑겠습니다."

  "네, 저희도 결정했어요."

  "저희도요."
  "아, 잠시만요. 저는 점수 집계가 덜 끝나서...... 다들 빠르시네요."

  

  H는 슬쩍 옆자리에 앉아 있는 면접관의 면접 심사표를 보았다. 빈칸이 많았다. 그는 무슨 기준으로 OOO 씨를 뽑겠다고 결정했는지 궁금했다.  


  "면접 다 끝났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면접 심사표는 저희 쪽에 제출해주셔야 합니다."


  면접 진행 요원의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그의 면접 심사표는 숫자들로 채워졌다. 합격자도 가장 빨리 결정한 그 면접관은 면접 심사표도 가장 빨리 채웠다. 다른 2명의 면접관들도 숫자를 채워나갔다.


  "여기 있습니다."

  "저도 드리겠습니다."

  "여기요."


   H도 비어 있는 칸들을 머릿속에 떠오아무 숫자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역량 없는 면접관들 중 이것마저 늦게 제출하는 가장 역량 없는 면접관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H는 빈칸을 다 채우고 난 후 면접 심사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왜 13번에게 5점을 줬지. 이 사람이 어떤 말을 했길래 5를 여기에 썼지. 13번이 누구지? 음...... 5가 왜 이렇게 많지.'


  "면접관님, 다 작성하셨어요? 면접관님?"

  "아, 네. 네,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모두 다 고생하셨습니다."


  H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4

  

  면접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H는 다행히 채용 비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을 떠올려냈다.


 '지원자들이 제출한 서류를 미리 요청한 면접관이 있었나요?'


  OOO을 뽑겠다는 말을 들은 후 면접이 끝나고 관계자에게 묻고자 했던 그 질문이었다. H는 걸음을 멈췄다. 생각에 잠겼던 H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H는 요한 질문을 하기 위해 다시 면접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약속이 있는 것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다시 돌아가기에 너무 먼 길 온 것도 아니었다. 


  '그 면접관이 지원자들의 서류를 미리 요청했다면 서류를 다 검토했는지에 대해 따져야 한다. 미리 요청하지 않았다면 왜 그 사람을 뽑았는지에 대해 따져야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한테 따지면 어떡하지? 신도 면접 심사표에 아무 숫자나 적었잖아하고.'


  잠시 복잡했던 H의 머릿속은 단 하나의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이제와서 뭘 어떻게 하겠어. 다음에 더 잘하자.'


  접관 H의 첫 심사는 이렇게 끝이 났다.


  "안녕하세요, ㅁㅁㅁ입니다. 반갑습니다."


  2주 후 사무실에 새로운 인턴이 출근했다.

  H는 이 사람이 낯설었다. H는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크게 없었다. H가 이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자신이 이 사람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었다는 것이었다.


  3일 후 아침, ㅁㅁㅁ은 SNS 메시지로 퇴사 의사를 밝혔고 더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매 순간, 진심을 다했어? 진짜? 확실해? 그때도?








   * '이상한 사회적기업, 이상한 사회적경제'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를 접하며 '이상한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들은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이상한 것인지,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가 이상한 것인지 함께 이야기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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