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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완전 시골에서 자랐어

딸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 1

by 최현규

전북 무주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게 된 나. 두 딸의 아빠가 지내온 시골 동네 생활 이야기. 놀이터가 된 산과 들, 그리고 친구가 되어준 송아지와 토끼, 오리. 잊혀 가기 전, 그리고 잊혀 가겠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내가 지낸 유년기를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 시골에서 자라 지하철, 버스가 아직도 익숙하지 않지만 이것으로 배운 삶이라는 긴 장편소설의 작은 조각을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주변에서 나에게 전달해 준 따뜻한 감정을 풀어내 글로 쓴다.


아버지는 농사꾼이었다. 해가 뜨면 시퍼런 마당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여름 새벽, 어느 집인지 모를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때, 아침을 짓는다고 아궁이에 불 때는 나무 탄내가 날 때, 그때 아버지는 일을 시작했다. "타닥, 타닥" 거리며 나무가 타는 소리와 리어카에 싣는 연장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나도 아빠를 따라나섰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좋았다. 차갑다기보다는 서늘했으며, 서늘하기보다는 시원했다. 숨을 쉴 때마다 새벽의 하늘이 온몸에 가득 차는 느낌이 좋았다. 아버지의 리어카는 때때로 두엄을 담고, 소여물도 담고, 염소도 담고, 그리고 나도 가끔 담겼다.


리어카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디좁은 골목길을 따라 저 끝까지 올라가면, 솔 담배를 파시던 할아버지가 사는 집이 있었다. 아버지가 가끔 백 원짜리를 주며 가서 담배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곤 했었다. 매쾌한 담배 연기가 퍼져가는 곳에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오솔길의 초입에 작은 샘이 있었고, 그 샘을 따라 계곡이 있더랬다. 동네 형이 이야기했다. 산에 동굴이 있다고 그 동굴에는 박쥐도 있고, 천장에서는 물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 동굴을 찾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다. 작년에 아버지에게 물어봤었다. 우리가 살던 그 동네 뒷산에 동굴이 있었느냐고, 아버지가 어떻게 아냐며 어릴 때 가본 적이 있느냐 물었다. "아니, 안 가봤어" 하고, 그때 어릴 때 가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함께 나왔다.


산 날망에 오르면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스쳐 지나가며 턱까지 차오른 가파른 숨을 이내 씻겨 주었다. 날망에서는 저 너머 마을 어귀가 보였다. 밭에 나갔던 경운기가 탈탈대며 돌아오고, 집 곳곳마다 나무를 때며 밥 짓는 냄새가 퍼져나갈 때, 저녁이 왔음을 몸으로 알고 산을 내려갔다. 보름달이 환하게 뜰 때면, 가로등 없이 어두운 골목이 환하게 보였다.


이 시골의 기억을 너희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다. 그래서 주말이면, 너희들을 데리고 나가 산에 올라 바람이 불어올 때 팔을 벌리고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어보라, 그때 기분이 어떠냐 물어봤었다. 바람은 부는 소리 없이 온다.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 자신이 이내 왔음을 우리에게 알린다. 살면서 가끔은 그러한 소리에 그때의 기억에 기대 쉴 수 있는 작은 기억을 너희에게 전달해 주고 싶다.


보문사.jpg 2025.03.16 석모도 보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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