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조직은 언제나 이말복 같은 인간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나는 강북의 성덕여대에서 연구교수를 했다. 가까운 희경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를 하며 지냈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었고, 시간 강사의 월급으로는 살기가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 교수님이 계시지 않으니 누군가 끌어줄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연구교수의 그런 삶을 2년 3년 더 할 자신도 없었다.
안 해본 일을 하고 싶었다. 산업계로 나가 보고 싶었다. 작은 회사에 취업했고, 여기서 3년을 지냈다.
누군가가 회사가 작다며 무시하는 말을 했다. 사실 무시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냥 이야기했을 수도 있고, 이유를 구태여 거창하게 말해준다 한들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
나는 그게 신경이 너무 쓰였다. 매몰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 후로, 전화를 받을 때, 미팅을 갈 때, 우리 회사가 뭘 하는지 구태여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게 무언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큰 회사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직했다.
2020년
이직은 어렵다. 해보지도 않았고 주변에 도움 받을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접근하는지 이력서는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구글을 찾아가며 사람들의 사례를 보며 배웠다. 그렇게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만들었고, 여기에 포트폴리오를 더해 연구 분야를 포장해 두었다.
10군데 정도 이력서를 낸 것 같다.
대기업은 모두 불합격이고,
중견 기업 중 한 군데가 연락이 왔다.
동탄에서 면접을 보자고 했고,
1차 면접에서 대표이사까지 참석했다. 1차에서 결정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합격했고, 현 회사보다 규모가 20배는 커서 큰 기업에서 배울 게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망
이직한 회사는 명성과는 달리 너무 심각했다. 연구소는 7명이었는데, 대부분 이말복의 후배 또는 같은 실험실 출신 학생들이었다. 어쩐지 나 빼고 전부다 경상도 사투리를 썼으며, 자신들만이 아는 식당이나,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여기에 건강기능식품 분야를 해본 사람도 없었다. 단순히 아는 사람, 또는 좋은 사람이어서 모인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권기출이라는 교수의 실험실에 회사의 직원들이 함께 일을 대학원생처럼 일을 하였으며, 그 그룹이 그대로 중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나와 같이 입사한 입사동기는 한 달이 안되어 사표를 냈다. 사표를 내고 나서 나에게 하는 말이 자기는 이러한 분위기를 못 견디겠으며, 시간을 낭비하고 커리어를 망칠 것이라 했다.
나도 그만두고 싶었으나, 이직한다는 꿈에 부풀어서 먼저 이사를 왔고, 서울과 거리가 좀 되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그냥 해보자 열심히 하다 보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다 잡아서 일하다 보면 주간 보고하는 날엔 다시 실망이 돌아왔다. 매주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고 그러다 곪고 곪은 게 터져버렸다.
기대
어쩌면 이말복이가 잘못한 것은 없을 수도 있다. 기대를 했던 내가 잘못일 수도 있다.
이말복이는 자기 입장에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연구소를 만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거기에 어찌 보면 눈이 높은 사람이 와서 뭐가 맞니 틀리니 궤변을 늘어놓았던 것 일 수도 있다.
이말복이는 미쳐 날뛰는 내가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서 징계위원회는 디스크가 터졌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은 것이고, 그 후로도 날 피해 다녔다.
그에게 있어서 회사는 대학원 생활의 연장선이었으며,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아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놓은 것은 사람이 좋고, 마음이 약해서 일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그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살아남았고, 지금까지도 살아남았다.
왜 성과 없이,
아무 일 없이 회사에서 지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직장에 가서도 같은 고민을 했다.
첫 번째, 버텨야만 알 수 있는 것
- 피터의 법칙
이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더 큰 그룹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이 있었다. 왜 그렇지? 왜 세상이 다르지? 이렇게 잘못된 게 세상이라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생각을 몇 년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나중에 책에서 알게 된 개념이 있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페터의 원리(Peter Principle)’다.
조직에서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 수준까지 승진하게 되어 있고, 그 자리에 도달한 뒤에는 그 무능함 때문에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는 원리다.
이말복은 그 원리의 교과서 같은 사례였다.
실험도, 기획도, 논문도, 제품도 제대로 할 줄 몰랐지만, 지도교수의 신뢰, ‘착하고 말 잘 듣는 성격’, 그리고 어떤 종류의 충성심 때문에 연구소장 자리까지 올라왔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일을 만들지 않았고, 반대를 하지 않았으며, 회장에게 ‘예’만 했다.
그런 사람은 조직에겐 참 유용하다. 책임지지 않으면서도 체계 안을 유지시켜 주는 사람.
무능하지만 제거할 이유가 없는 사람. 조직은 그런 사람을 오히려 ‘좋은 사람’이라 부른다.
이말복과는 다르지만, 더 황당한 개념도 있다. 이것은 딜버트의 법칙(Dilbert Principle)이다.
이 법칙은 말한다.
도전하지 않는 사람, 무리하지 않는 사람, 리스크를 지지 않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살아남는다고.
그룹의 이사, 실장은 시도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스스로 만들지 않았고, 실험도, 기획도, 전략도 누군가 시키는 것만 했다.
문제도 없고, 변화도 없고, 책임도 없는 사람.
그랬기에 그는 오래 남았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았다.
조직은 그런 사람을 ‘안정적’이라 말하고, ‘검증된 사람’이라 포장한다.
반면에 도전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도전은 실패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실패한 사람은 다시 말해 도전한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는 실패한 사람보다는 우위에 위치한다.
작은 사회는 이러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기업이 어느 규모를 갖고 성장하게 되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
나는 2020년에 10개월간 이말복과 함께 하였다.
이후 3년 동안 이말복이 생각나서 분노의 눈물을 흘리거나, 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그가 나의 희망을 짓밟은 것 같았으며, 큰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이해한다. 피터건, 딜버트건 법칙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지인 중에 한 분이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가 99%의 잘못을 해도 1%의 좋은 면을 보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그럼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며, 행복한 상태 (내면의 평온을 이야기한 것 같다)를 유지하는데 좋다고 했다.
다른 지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은 얼굴이 여러 개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좋게 본 것은 여러 가지 얼굴 중에 좋은 면만 봐서 그런 것이고, 안 좋은 면이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때 좋은 면을 따라갈지 아니면 나쁜 면에 집중해서 관계를 그만둘지는 내 선택이라고 했다.
어떤 일이 생겼고, 그 일에 매몰되는 것은 나 자신을 해치는 것 같다.
난 자주 매몰되며, 나 스스로를 괴롭혀 왔다.
어쩌면 나는 끝까지 그를 이해하려고 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