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은 늘 그의 손에 있었다.
2025년 5월 16일 지도교수님과 칼국수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
SRT를 타고 대구에 출장을 갔다가, 올라오는 표가 없어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충무로에 맡겨둔 인쇄물을 찾았다.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한다. 주변에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충무로에 가게 되면 매번 혼자 들리는 가게가 있다. 자리에 앉아 냉면을 주문하고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익숙한 단어들이 들린다. 슬쩍 보니 나이가 많은 여자분은 교수고, 그 앞은 학생 같아 보였다. 학생은 20대 후반, 30초로 보였고 아직 박사학위를 받기 전인 것 같았다. 졸업논문 주제가 어쩌니 저쩌니,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 지도교수님은 칼국수를 좋아하셨다. 영남대 본관 뒤편 샛길을 따라 내려가면, 감나무집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2천 원짜리 칼국수를 팔던 감나무집, 학교 근처 사동이라는 곳엔 사동칼국수, 동네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삼성현이 쓰여있던 삼거리에 있던 와촌칼국수, 경산 시장 근처에 칼제비집...
대학원을 다닐 땐, 칼국수가 너무 싫었다. 무슨 점심에 밥 먹을 일만 있으면 칼국수집이었다. 교수님은 뜨거워도 빨리 먹기에 그 속도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은 체해서 먹고 토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은 지도교수님과 칼국수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누군가가 지도교수님과 제자와 스승의 날이라며 찾아뵜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며, 나더러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 지도교수님은 나의 졸업을 한 달 남겨두시고 돌아가셨다.
2020년 개 같은 회사
이말복이는 어떻게 박사학위를 받았는지도 모르게 정말 아는 게 없었다. 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박사라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떤 논문을 썼는지 또는 얼마나 많이 썼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특히나 이름이 특이한 사람은 더 그렇다. 이말복이는 Pubmed에서 논문이 나오지 않았다. 국문지만 잔뜩 나왔다. 연구를 한 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판단이 먼저 들었다. 언젠가 이말복이는 자신의 대학원 생활이 엄청 힘들었다며 그 생활 이야기를 길게도 늘어놨었다. 200종의 균주를 UV를 통해서 Mutation 시켰다는 이야기, 지도 교수 권기철이가 힘들게 했다던 이야기. 들으면서 별 같잖은 이야기를 주제로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런 이말복이를 따르던 김병순이라는 팀장이 하나 있었다. 이 사람은 무슨 대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안동대 욕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병순이는 안동대 공채를 냈었고, 서류 탈락되었다 한다. 병순이도 마찬가지로 논문이 없었다. 병순이는 안동대가 아니면 이말복이 욕을 했다. 이말복이는 유산균 균주를 새로 얻고 싶어서, 흙을 채집하고 거기에서 유산균 균주를 찾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균주가 제대로 나오지 않자, 병순이와 다른 직원들이 편의점에서 파는 유산균 제품을 사다가 거기에서 유산균을 분리한 뒤 미생물 은행에 기탁했다고 했다. 물론 이걸 이말복이도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했다. 이건 한참 후에 알게 되었는데, 이말복이는 시중제품의 유산균을 분리해서 가져오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모두 다 그렇게 한다며, 그리고 실험실에서 계대배양을 통해 균주가 바뀌니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난 이런 곳에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지냈다. 집에는 돌이 안된 딸이 있었으며, 와이프는 육아휴직 중이었다. 동탄으로 전세로 들어오며, 받은 전세자금 대출이 있었다.
이말복
말복이의 아버지는 동대문에서 약국을 운영했다고 했다. 말복이 형은 서울대를 나왔다고 했다. 이말복이는 어렸을 때 형과 비교를 많이 당했다고 했다.
권기철
이중복의 지도교수는 회장의 사촌이라고 했다. 회장은 본래 택시기사를 하다가 닭집을 차렸으며, 그 닭집은 장사가 되지 않아 하루에 2마리를 팔면 많이 팔던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 회장의 친척이 간장을 양념으로 해서 팔아보라는 권유에 치킨에 간장을 바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입소문이 나 장사가 그럭저럭 되었다 했다. 현재 회장이 된 것은 이때, 친척 중에 프랜차이즈 개념을 아는 이가 있어 이것을 도입하고, 프랜차이즈 화 하면서 회사의 규모가 커졌다 한다.
그래서 회장은 친척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회장은 멍청하게도 치킨을 파는 행위가 본래 회사의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바이오라는 분야로 옮기고 싶어 했으며, 바이오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던 의료기기이던 그러한 분야로 진출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친척 중에서 가능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였는데, 마침 미생물학과 교수이던 권기철이가 있었다.
권기철이는 2022년 정년퇴직이 예정되어 있었고, 자신의 제자 중 적당히 멍청하고 말 잘 듣는 이말복이를 회사 연구소장으로 앉혀 두었다. 권기철이가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다른 회사나 학교는 갈 자리가 없을 것이고, 연구소에 자신의 심복을 두어 자문역할을 하던지, 뭐라도 하는 척을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연구던, 제품개발이던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던 권기철
휴대폰에 "도둑놈새끼"라고 저장된 사람이 있다. 권기철이다. 이 등신 같은 회사에 3개년 연구계획을 짜야한다던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계획을 썼고 그걸 연구소장에게 줬다. 연구소장을 그걸 봤고, 그걸 다시 재편집하여 회장에게 가져다줬다. 회장은 다시 전략기획실장에게 그 자료를 보여주었다.
어느 날 전략기획실장이 날 불렀다.
조금철: "야 이거 네가 썼냐?"
나: "어? 맞아요, 이거 어디서 보셨어요?"
조금철: "회장님이 주시던데?, 이거 권기철 교수님이 주신거래, 이렇게 한번 잘해봐"
나: "네"
종이를 받고 읽어보니 3/4를 내가 쓴걸 그대로 베껴놓았다. 유통 벤더를 통한 판매를 벤더라는 말을 몰라서 그런지 네이버 밴드라고 고쳐져 있었다. 화가 났다.
연구소장에게 전화해서 내가 보고했던 게 왜 권기철 교수가 한 내용으로 둔갑되어 있는지 물어봤다. 이상한 말을 얼버무리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길래, 권기철 교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바로 전화했다.
"교수님, 교수님은 외부인 아닌가요? 외부 자문으로 되어 계신 분이 자문을 왜 직원이 쓴 내용을 훔쳐서 합니까?"
권기철: "이말복 이랑 이야기해봐, 난 모른다"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고, 번호를 "도둑놈새끼"라고 저장해 놓고, 카톡은 차단해 두었다.
사슬은 늘 그의 손에 있었다.
권기철이는 이말복이 목에 목줄을 걸어 두었다. 대학원을 처음 진학하고 싶다고 순진한 이말복이가 이야기했을 때부터일 거다. 교수새끼들은 대학원생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수년간 이말복이는 권기철이 사슬에 묶여 개 같은 생활을 했을 거다. 연구비는 연구비대로 빼돌리고 때때로 세차도 해주고, 학위 발표 때는 지도금 명목으로 몇 백씩 쥐어 줬을 거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취업도 못하던 이말복이를 취직시켜 준 건 권기철이다. 권기철이 뭘 어쨌든 간에 이말복이는 알던 모르던 반항 할 수도 없었을 거다. 말 그대로 길들여져서 가축화되었을 테니 그래서 그것이 맞다고 아니 자신의 삶에서는 맞다고 생각하고 살 거다.
우리 지도교수님은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 매일 밤늦게까지 실험하는 날 알고 있었고 그것이 미안한지 토요일에 실험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알고 왔는지 피자를 2판씩 사 왔다. 한판은 같이 먹고 한판은 가져가서 냉동실에 얼려놓고 먹으라 했다.
어느 날에는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르겠는 노란색 봉투에 현금 100만 원을 담아 놓고, "자네 잠깐 들어오게" 해서 들어가면 봉투를 책상에 턱 하고 내려놓고는 "써라" 하는 요즘 속된 말로 상남자스러움이 있었고, 낭만이라는 것이 있었다.
나한테는 지도교수 이외에 모든 교수는 권기출 같았다.
대구한의대학교에 교수 공채가 났었다. 추천서가 2부 필요했다. 그때 연구교수를 하던 교수한테 한 장을 받았고, 한 장은 영남대에 교수님께 요청을 해놓았다. 본래는 지도교수의 추천서가 필요했는데, 지도교수가 돌아가셨으니 그분에게 요청을 했다. 흔쾌히 오라고 하시더라, 강원도 원주에서 경북 경산까지 차를 끌고 내려갔다. 내려간 김에 추천서를 받고 그 추천서를 합하여 서류를 내고자 모든 서류를 다 출력했고, 지금까지 쓴 논문까지 다 출력해서 이름에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서 모아두었다.
영남대 교수 방에 가니 지금은 바쁘니, 이따가 이야기를 하자고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3시간을 기다렸는데, 그때 나오더니 이야기를 하자고 했고, 책상을 세게 두드리며 내가 지금 공채에 내는 게 맞냐고 물으면서 내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현재 연구교수로 하고 있는 곳에 간지 얼마 안 된걸 트집 잡았다. 2년 되었었는데 한 10년은 있었어야 했나, 연구교수로 있던 곳 교수는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을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교수공채 지원서 박스를 두고 가라고 했다. 절대 내지 말라며, 자신이 갖고 있겠다 했다.
추천서를 주기 싫으면 안 주는 거지 지원서는 왜 놓고 가라는 거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영남대 교수 후배가 같은 자리에 냈고, 그 사람에게 추천서를 써줬다고 했다. 그럼 왜 오라고 했을까? 왜 지원서류를 빼앗아 갔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냥 가끔 대구에 가게 되고, 생각이 나면 납골당에 들렀다 오는 게 그게 전부였다.
작년 즈음 영남대 교수한테 토요일에 전화가 왔다. 빨간색 거절버튼을 눌러 거절을 눌렀다.
다시 전화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고, 무례함을 보여준 것에 대한 죄스러움도 없었다.
요즘은 울지 않는데 가끔 우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