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 비 옴
지난 일이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탈무드를 읽다가 생각나서 쓴다.
입으로 다치게 하지 않는다. | 탈무드 中
동물들이 모여 뱀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동물이 뱀을 향해 물었다.
"사자는 먹이를 쓰러뜨려 먹고, 이리는 먹이를 찢어서 먹지, 그런데 뱀, 그대는 먹이를 통째로 삼켜버리는데 이유는 뭐지?"
그러자 뱀이 대답했다.
"나는 중상을 하는 자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입으로 상대방을 다치게 하지는 않으니까"
이 부분을 처음 읽고 나는 잠시 어떠한 이질감에 따른 인지부조화가 찾아왔다. 뱀은 성서에서 흔히 교활하고 유혹적이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여기 탈무드에서 비유로 뱀을 제시한 이유가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역설적 대비를 통한 강조
- 뱀은 본래 나쁜 이미지가 강한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입조차 상대를 비방하거나 헐뜯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하여, 말로 상처 주는 행위가 얼마나 나쁜지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두 번째, 말의 끼치는 영향에 대한 극적인 강조
- 인간을 타락시킨 원초적 유혹자인 뱀조차도 상대방을 말로써 다치게 하는 것은 피한다.
세 번째, 의도적 대비 효과
- 부정적인 존재조차도 특정 부분에서는 배울 점이 있음을 시사함. 이에 윤리성을 다시금 환기
결국 이 구절은,
입으로 남을 찢고 무너뜨리는 행위가 얼마나 깊은 폭력인지 교묘하게 설계되어, 절제된 방식으로 전달해 주는 것과 같다. 그럼 나는 왜 이 부분에서 생각을 했는가?
지난날 P는 날 험담했고 나는 거기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P는 별 의미가 없었다고 했으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지 않음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 이후,
나는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망상을 하며 다시 스스로에게 상처를 줬다. P의 말보다는 그 말을 둘러싼 내 해석이 훨씬 더 날카로웠을 것이다.
탈무드에서 뱀은 말한다.
"나는 입으로 상대를 다치게 하진 않아" 이것은 분명 자기 방식에 대한 설명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해석하고, 의미를 확장시키는 건 결국 듣는 쪽이다. 그 말이 상처가 되는가 아닌가는, 내 마음이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놓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어쩌면 나는 나를 스스로 찌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P의 말이 사실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내 내면의 말 일 수도 있다.
이제 나는 나에게 묻고 싶다.
내가 정말 상처를 받은 것이 P의 말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이미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그의 입을 빌려 들었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