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는 꼭 가족, 연인과 함께 해야 하는가
연말이 되면 늘 괜스레 다이어리를 펴서 끄적거리는 의식(ritual)을 시작한다. 예컨대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 3가지를 적는다거나, 올해의 아쉬운 점을 돌아본다거나 이런 것들. 1월 이후에는 많이 들여다보지도 않지만 꼭 장만해서 책상 위에 놓는 다이어리가 한 권 한 권 쌓일수록 나이를 먹는 것을 눈으로 실감한다. 한동안 로그인조차 안 하던 브런치에 로그인한 것도 바로 이 새해 다이어리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겨울만 되면 내향형 인간이 되곤 하는 나는 올해도 송년회 약속을 많이 잡지 않았다. 봄, 가을에는 쾌적한 날씨를 하루도 빠짐없이 즐기고자 주 7일 약속으로 채우는 나지만, 겨울엔 주 1-2회로 약속을 줄인다. 추위를 많이 타는 '춥찔이'기에 스스로를 추위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함(대신 이불속에 누워있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연말의 북적거리는 분위기에는 왠지 동조하고 싶지 않은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다.
빛나는 알전구 조명과 알록달록한 트리,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참으로 예쁘지만, 그걸 꼭 여럿이(특별히는 가족, 연인과) 함께 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냥 감흥 없이 오며 가며 출퇴근길에 보아도 예쁘다. 그냥 원래 예쁜 오너먼트들인 것이다.
그런데 왜 꼭 예수님의 생신 전날, 당일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시끌벅적하게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즐겨야 하는 분위기인 건지 못마땅하다.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20대에는 평생 함께할 것만 같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과 육아로 인해 만나기 어려워졌다. 함께 있을 때 따뜻한 평안보다는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주던 가족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 그리하여 다른 날은 고독을 즐기는 도시여자가 된 양 즐겁게 지내곤 하지만, 왠지 크리스마스에는 혼자 시간을 보내면 청승맞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인지(물론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진 않았다).
괜히 더 시대의 반항아인 것처럼 2022년의 마지막 날, 일찍 침대에 누워 딥슬립을 했다. 해가 바뀌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사실 전날 음주로 인한 숙취를 다 극복하지 못한 채 토요일 출근을 감행했던 터라, 퇴근 후 오후 8시쯤 침대에 뻗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고독한 연말연시를 보낸 소감은?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 또 새로운 아침이 밝았구나. 오늘은 무얼 하고 무얼 먹지.
어쩌면 나에게는 작은 소동 같이 느껴지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를 꾸미는 온갖 구성 요소들(이를테면 장식품, 조명부터 해서 케이크나 멋들어진 식사를 대접하는 외식 산업까지)이 그저 소비를 부추기는 거대한 자본주의적 세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혼자여도 아무렇지 않은 연초를 맞아본다. 주변 소음에 쉬이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기준을 하나씩 더 세울 수 있는 새해가 되어야지,라고 마음먹으며. 새해를 위해 소비한 다이어리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