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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Apr 17. 2022

이제는 만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말들 2 

이제는 아버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아버님과의 만남을 허 하겠다'는 의사의 말이 떨어졌다. 


같은 하늘 아래 있어도 만남이 허용되지 않았다. 지척에 두고도 갈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이것은 이산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다.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우리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더욱이 중환자실 환자들은 보호자의 간병조차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코로나는 38선 이상의 분단 효과를 지니게 되었다. 


그들의 상봉은 죽을 때서야 허락된다. 보고 싶었지만 올 수 없었고, 이제는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곧 떠나보내야 한다. 지금은 떠나보낼 때에야 만남이 허용되는 잔인한 코로나 시대다. 




가운과 장갑을 착용하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열다섯 명 남짓의 환자들. 그들은 하루 종일 숨을 쉬고 누워있는 것만 하는 사람들이다. 여느 병원의 중환자실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환자들 침대에 쓰인 입실 날짜가 눈에 들어온다. 거꾸로 계산해 보니 그들은 이곳에서 6개월 넘게 살아있었다. 아버님은 중환자실에 입실한 지 한 달 만이었다. 한 달 전 중환자실 입실했을 당시, 어머님은 그들 사이에서 아버님이 가장 똘똘해 보인다고 안심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봐도 이곳의 환자들 중 가장 좋지 않은 환자가 되어 있었다. 


아버님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드디어 찾았지만 두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나는 중환자실을 난생처음 와보는 사람처럼 굴었다. 평생 보지 못한 단 한 장면 때문이었다. 수없이 보았던 중환자실의 환자들 틈에 나의 가족이 그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버님의 의식 없는 모습이 생경했다. 


하얀 마스크 대신 투명한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아버님. 여름 내내 조느라 감겨 있던 눈이었지만, 오늘은 그와는 정 반대였다. 한껏 축소된 동공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핀 포인트 퓨필. 모르핀으로 인한 반응 이리라. 동시에 체인 스트록 호흡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임종이 가까웠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내가 아버님 옆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말한다. 


- 얼마 전까지는 알아듣고 반응은 하셨어요. 어제는 산소포화도가 60까지 떨어졌는데, 오늘은 조금 안정적이시네요. 말씀 나누세요. 


- 아버님, 저 왔어요. 


천장만 바라보던 눈이 내 쪽으로 심하게 흔들린다. 이것이 간호사가 말하는 반응일 것이다. 


- 반가운 분이 오셨나 봐요.라고 간호사가 말한다.


나는 더 크게 소리쳤다. 보청기도 하지 않고, 약물에 취해 있는 아버님에게 내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서는 내가 더 크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 아버님, 저 왔어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 보고 싶었어요. 


심하게 몸이 들썩 거린다. 의미 있는 움직임일 리 없지만, 내가 와서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요동치는 눈동자와 움직임에 내 마음이 흔들린다. 병원이었지만 나는 가운을 입지 않았으므로 무장해제되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흐르는 눈물은 이내 내가 쓰고 온 마스크 안으로 숨어들었다. 감염 방지를 위해 양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함부로 눈물을 닦을 수도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둔 채 젖은 마스크 속으로 찌그러진 입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생을 떠나려는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버님. 아버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생의 마지막까지 미리 경험해 보지 못할, 죽음이 얼마나 두려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나는 바늘이 피부를 관통할 때마다 괴함을 지르던 환자가 떠올랐다. 공포에 떨던 그를 얌전하게 한 것은 그 어떤 마취제나 진통제, 약물이 아니었다. 환자의 손을 잡고 있었던 간호사의 따뜻한 손이었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는 간단한 신체적 접촉이 환자의 공포와 두려움을 잊게 한다.


강직되어 있던 아버님의 손을 펴 마주 잡고, 다리를 주물렀다. 튼실했던 다리는 사라지고 이제는 앙상한 뼈만 남아 구부러진 채였다. 하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다.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에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 손, 두 눈으로 아버님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아버님을 기억하려는 손길이 아버님의 두려움을 없애 줄 거라 믿었다. 


- 아버님, 제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세요. 


약속된 면회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다른 환자의 안전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 아버님, 안녕히 계세요. 


이제 정말 영원한 안녕이었다. 코로나로 이산가족이 되어 아버님을 뵙지 못한 지 4개월째였지만, 그동안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희망조차 없다. 코로나 시대에 허용된 마지막 면회는 곧 영원한 이별을 뜻한다. 죽음을 경계로 앞으로 영영 아버님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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