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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Apr 23. 2022

떠나는 사람이 남기고 간 것은

- 지원아. 할아버지 하늘나라로 가셨어.

- 하늘나라? 할아버지 키가 커서 하늘나라 가신 거야?


금요일 밤 아버님은 힘드셨던 세상과의 인연을 끝내 놓으셨다. 일주일 전에 아버님은 살아있었고, 며칠 전에는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죽었고, 앞으로는 죽은 사람이 된다. 의사가 된 이후로 나는 죽어가는 사람과 죽어 있는 사람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으로 죽고 사는 것은 반대 선상에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둘은 같은 선상에 있는 말이다. 며칠 전 아버님은 죽어가고 있었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 지금은 살아있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사라지고 마는 사람들이 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가족은 없었다. 남편은 마지막 순간 만큼은 아버지와 함께 하기 위해 이틀 밤을 꼬박 새웠지만, 찰나에 놓쳐버렸다. 연락을 받고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유언 하나 남기지 않았다. 말씀이 없으신 아버님 다웠다. 아직 살아있는 주위의 환자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사방을 커튼 친 채로 요양병원의 한편에서 쓸쓸히 마지막을 맞이 했을 것이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가족들의 위안은 그래도 마지막은 편안했을 거라는 추측뿐이다.


연락을 받은 남편은 아버님을 모시기 위해 떠났고, 나는 장례식장을 섭외했다. 코로나로 인해 장례는 가족 친지들끼리 조촐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주말. 단 이틀 동안 치러지게 될 장례식이었다. 나를 대신할 의사를 찾지 못한 나는 토요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출근했다. 검은색 상하복을 입고 가운을 걸쳤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했다. 슬프지만, 가운만 입으면 나는 슬프지 않은 척할 수 있었다. 환자들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약을 처방하고, 안부를 물었다. 의사로서 내가 할 일을 마치고 다시 검은색 외투를 걸쳤다. 아버님이 계시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가운을 벗고 나니, 슬픔이 몰려왔다. 온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맑은 날이었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비가 오면 자동차 앞 유리를 닦아줄 와이퍼가 있듯, 내게도 눈물을 닦을 수 있는 와이퍼가 필요했다. 눈물의 폭우를 가르며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토요일 이른 아침 한산한 도로 덕분에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준비된 상복으로 환복 했다. 처음 입어본 상복이었다. 의사의 흰 가운이 눈물을 흡수하는 옷이라면, 상복은 눈물을 뿜어내는 옷이다. 상복을 입고 조문을 하는 내내 내가 흘렸던 눈물은 모두 상복 때문이었다.   


입관식. 영원히 잠든 아버님을 마주했다. 임종 면회 때와는 달리 고통 없이 편안해 보였다. 가족의 뜻대로 아버님은 수의가 아닌 예복 차림이었다. 아들 셋을 결혼시키면서 입으셨던 옷이다. 180cm가 넘는 풍채가 좋으셨던 아버님에게 그 양복은 아버님을 최고로 빛나게 해주는 날개 같은 옷이었다. 이제는 그 날개 옷을 입고 하늘로 가시게 되었다. 생전에 자신은 아프지 않고, 아무렇지 않다고 하셨던 아버님에게 어울리는 차림이었다. 그토록 싫어하시던 콧줄도 빼고, 외출 시에 늘 착용하던 모자를 쓰고 계신 아버님은 여전히 멋있었다. 입술이 마르고 야윈 것만 빼고 보면  까무룩 잠이 드신 것만 같았다. '아버님'이라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깨어나 콜록 기침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기침하지 않을 아버님이다.


"당신 이만하면 잘 살았어요."


도무지 아버님의 모습을 볼 용기가 없다던 시어머니는 아버님에게 이 말을 전해주라고 했다. 이렇게 아버님의 삶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아버님을 항구히 기억하기 위해 더이상 뛰지 않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이제는 차갑게 식어버린 아버님의 손을 어루만졌다.


- 아버님. 이제는 편히 쉬세요. 훌륭한 아드님, 손자 손녀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발인. 일요일 새벽. 아버님 아프시기 전에 온 가족이 가을마다 함께 찾았던 곳. 아버님의 어른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떠났다. 아버님과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이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가는 리무진 뒤를 따랐다. 그곳에 아버님이 잠들어 있다. 


피로 가득한 버스 안에서 모두들 잠들었지만, 나는 잠들지 못했다. 아버님은 우리에게 우산 같은 존재였다. 비가 오는 궂은날에도, 해가 쨍하게 비추는 맑은 날에도. 아니 하늘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아버님은 늘 그 자리에 계셨다. 그런 아버님이 있었기에 우리는 든든했었다. 하늘을 가려주던 큰 우산이 사라졌다. 이 슬픔조차 아버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 부지불식간에 스며드는 슬픔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슬픔은 파도와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아버님을 생각하면, 슬픔이 물러갔다. 편안한 아버님을 생각한다면 슬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승이 좋고 저승이 나쁘다는 것은 이승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추측일지도 모른다. 슬픔의 썰뭄이었다. 슬프지 않았다. 살아계시지 않으니 고통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슬픔의 밀물이 몰려들었다. 슬픔의 파도는 아버님의 부재 때문이었다. 만나고 싶어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것에 대한 서운함. 오랜 시간 함께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 좋은 곳을 함께 다니지 못했던 것에 대한 죄송함. 코로나로 인해 홀로 싸우셔야 했던 수많은 밤들. 의사 며느리로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것들. 슬픔의 파도는 그 높이가 커서 밀려들 때에는 거침이 없었다.


흙을 좋아했던 아버님이 흙으로 돌아가셨다. 아버님 유골함에 흙 한 줌을 덮어 드렸다. 덮어드리는 흙이 아버님의 이불이라고 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차가운 흙이 이불이 될 리는 없겠지만, 온 가족이 배웅하는 마지막 길 결코 춥고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님을 모시고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였다. 가족의 우산이었던 아버님이 이제는 별이 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비추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는 것이 삶의 일부이듯, 죽음 또한 삶의 한 부분이었다. 살아있고 죽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나는 결국 삶을 보고 보았던 것이다. 슬픔의 무게를 온전히 지니고 보니 깨달았다. 내가 만난 수많은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이러한 아픔을 겪어왔다는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누구나 이런 애통을 마주 할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거리의 모든 이들이 안쓰러웠다. 아버님이 내게 준 깨달음으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내가 영향을 주고받은 모든 이들의 결과이므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삶은 결코 허무하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은 또 다른 이의 삶으로 이어진다. 크든 작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인생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지만 우리에게 영원히 스며들었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삶은 영원히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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