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마음도 풀리게 하는 참치 토마토 파스타

Sep 6. 2025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날은 모처럼만에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날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은 내 기대와 달랐다. 친구와 손잡고 웃으며 나오길 바랐지만, 아이는 혼자 내려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싸운 건 아닌지, 이내 내 머릿속에는 상상의 날개가 펼쳐진다. 나를 보아도 반갑다는 표정은커녕, 삐죽거린다. 가방을 내게 툭 내던지고는 냅다 놀이터로 달려갔다. 다른 집 아이가 엄마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나는 초라하고 멋쩍었다. 내가 온 것이 싫은가. 괜히 속상했다. 나는 속이 좁은 엄마였다. 아이의 무심히 지은 작은 표정, 의미 없는 행동 하나에도 쉽게 마음이 흔들렸다. 비교와 상상의 나래는 멈추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이는 나를 많이 닮았다. 아이는 나의 작은 표정에도 상대방의 기분을 살핀다. 나와 다른 점은 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반면, 아이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나를 닮아서 속상하고, 나와 달라서 답답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은 더 무거웠다. 아이를 위해 점심시간도 거른 채 뛰어왔는데, 이런 나를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했다.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꼬였던 날이었다. 뭐라도 먹어야 했다. 뭐를 먹어야 꼬인 이 마음이 풀어질까.

집에 도착해 냉장고와 창고를 뒤졌다. 손에 잡힌 건 참치캔과 파스타 면. '그래. 참치 토마토 파스타를 해 먹어야겠다.' 이 메뉴는 내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샘킴이 선보인 메뉴였다. 여러 번 해 먹어봤을 때 실패 없는 음식이었다. 재료는 간단했다. 참치캔과 99% 토마토 퓌레를 넣어 '라구 소스'를 만든다. 다른 한쪽에서는 파스타 면을 마늘과 올리브 오일로 볶아 국간장으로 맛을 입혔다. 접시에 소스를 담고, 면을 올리고 어린잎 채소와 고운 마늘, 견과류를 곁들였다.

한 입, 두 입. 허겁지겁 파스타를 먹다 보니 배가 부르고, 어느새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아이 때문이었는지, 내 조급함 때문이었는지, 무엇이 날 꼬이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재료를 손질하고, 지지고 볶고, 먹고 치우는 동안 내 마음의 근심도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요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목적으로만 하는 행위가 아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눈앞에 있는 재료를 손질하고 지지고 볶으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진다. 눈앞에 있는 재료들에 집중하면서 '지금, 여기'에 몰입하게 된다.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를 향해 내 달릴 수도 없다. 나는 지금 오직 여기에만 존재한다. 요리는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 많은 연구에서 요리 과정에서 호흡과 감각에 집중하는 것은 마음 챙김 명상처럼 작용해 불안을 덜고,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반복적인 손동작과 오감에 대한 집중이 불안을 감소시키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