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소 여의 탄생
2021년 신축년. 드디어 우리를 위한 새해가 밝았다.
나는 대한민국의 암소 여의사다. 열심히 사는 인생을 백조라고 비유한다. 겉으로는 우아해 보이지만, 발 밑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물질을 해대는 백조. 그건 조금이나마 우아한 구석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여자 의사의 인생이 우아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여자 의사의 삶은 암소에 가깝다. 암소의 쓸모는 암소일때부터. 여의사의 쓸모도 의사가 된 직후부터 시작된다.
암소 여의에게 공휴일, 토요일 출근은 기본이다. 육아 휴직은커녕 임신했다고 자르지 않고 출산 휴가를 쓰게 해 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산 예정일까지 병원에 충성을 다한다. 스스로 연봉을 깎아 의사들 사이에서도 욕을 먹는다. 안 가면 그만인 블랙리스트 병원의 대부분은 여자 의사들이 채워놓는다. 생계형 여자 의사에게는 그런 자리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잠시라도 경력 단절이라는 틈이 생기면, 쉬면 아쉬운 하루 일당 생각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눈을 비비며 의사들의 인력 시장을 기웃거린다.
가축의 신분인 암소는 본인의 집인 움막에서는 편하게 쉬기라도 한다. 적어도 자기가 먹고 자는 곳을 치우는 수고는 하지 않는다. 암소 여의사의 집은 어떠한가. 애초에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여자 의사의 집은 그야말로 너른 들판이다. 혼자서 갈기에 들판은 넓고 버겁다. 다른 사람의 손이나 기계의 힘을 빌려보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은 무성한 잡초들로 가득하다.
새끼라도 낳은 암소의 어깨는 더욱더 무겁다. 어떨 때는 가축 암소의 무게보다 내가 가진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새끼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걸어 다녀 독립이 가능하지만, 아기는 생후 1년간 걷지 도 못한다. 엄마의 손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완벽한 독립의 시기는 멀게만 느껴진다.
주말에는 지방에 계시는 시댁에 다녀왔다. 병환 중에 있는 시아버지에게 의사 며느리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성껏 만든 음식을 가져다 드리는 것뿐이었다. 치워졌을 리 없는 집으로 돌아와서 대충 요기를 했다. 더 놀아달라는 아이를 간신해 재우고, 나도 누울 수 있었다. 일요일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는데, 주말내내 출근한 기분이다.
눈 소식이 있는 월요일 아침이다. 전장에 전투하러 나가는 기분이다. 두껍지 않은 보라색 폴라티에 검은 바지. 비싸고 좋은 옷은 필요 없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 가운으로 웬만한 옷은 다 가려진다. 반짝 거리는 뾰족구두는 사치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니려면 굽이 바닥에 붙어있는 단화가 제격이다. 찰랑찰랑 잘 손질된 머릿결이면 좋겠지만, 끈 하나로 질끈 묶는 것이 위생에도 좋고 편하다. 출근길 나의 전투복장이다.
의사 면허증을 받은 이후부터 무직 인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이력에 틈이 벌어지면, 그 벌어진 틈만큼 잃을 것들이 두려웠다. 경제적인 이유가 크지만,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눌러 쌓아 두었던 의학 지식, 진료의 감을 잃어버릴까 봐, 혹시나 그렇게 자주 쓰던 약 이름을 잊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힘들게 얻은 의사 면허증이 무용지물이 되고, 능력 없는 의사가 되어버릴까 봐 스스로 그 틈을 용납하지 못했다
쉽게 벗지 못하는 의사가운. 그 가운을 입고 활동하는 주 무대인 병원에서 나는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은 의사에게 있으므로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의사가 아니었다면 결코 만나지 않았을 모든 인간 군상을 오늘도 만나야 한다. 예고되지 않은 무례한 환자들과의 만남은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팔뚝은 굵어져 아줌마가 다 되었는데도, 마음만은 여물지 못했다. 마음속 두려움은 커지고 오히려 소심해졌다.
집과 병원에서 밭도 갈고 새끼도 낳아 기르고, 우유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여자 의사의 인생이다.
이것이 진정 여자 의사의 삶인가. 우아하게 살고자 의사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 그리고 의사 노릇을 다 해야 하는 내 삶. 그건 결코 우아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모든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내 삶. 잠시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나는 암소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한번 밭을 갈러 들어온 이상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암소 인생. 이건 그 누구도 권한 삶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다.
암소 여의는 집안의 새끼를 뒤로 하고 오늘도 밭을 갈러 간다. 강가에서 유유자적하게 다리만 휘저으면 되는 백조 네가 부럽다. 암소가 백조가 될 리 만무하겠지만. 오늘도 암소 여의는 우아한 백조가 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