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어느 순간부터 시어머니는 내게 몸이 차가워 보인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내 손 한번 잡아보지도 않고 느낌만으로 내 몸이 차가운 줄 알아챘다. 실제로도 나의 손과 발이 차가웠기에 부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지 못했다.
전공의 수련기간에 결혼을 했다. 나보다 1~2년 앞서 결혼을 했던 여자 선배들은 수련기간 동안에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법적 굴레에 맞춰 출산휴가를 꽉 채워 쓸 수 있고, 그 기간 동안 백업해줄 동료와 선후배 의사가 있으니. 선배 말대로 이보다 더. 출산하기 좋은 조건은 없었다.
겉으로는 "어휴,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임신을 해요."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간절히 원했다. 힘든 수련기간에 출산휴가 3개월을 쓸 수 있다니. 나에게는 '출산휴가'에서 출산이라는 단어보다 휴가라는 단어가 더 와 닿았다. 출산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휴가는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는 갈 수 있었으니. 휴가. 그 느낌 아니까. 휴가라는 말의 달콤함을 느낄 행운이 나에게도 오길 바랬다.
결혼만 하면 바로 임신이 되는 줄 알았다. 출산휴가를 쓰면 나 대신 고생할 동기들을 상상하며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괜한 기우였다. 4년의 긴 수련기간이 끝나도록 출산 휴가는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남들에게는 그저 " 임신은 수련기간 끝나고요."라는 뻔한 핑계를 대었다. 그들에게 나는 수련을 위해 임신을 잠시 미룬 사람이었지만, 사실은 불임이었다.
결혼하고 4년 동안 단 한 번도. 실수로라도 임신을 해본 적이 없었다. '1년간 어떠한 장애 없이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하였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이를 불임이라고 한다.' 학생 때 달달 외우고 다녔으면서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임신이 되지 않은 거면서 임신을 미루고 있는 거라고 말하고, 스스로도 지금은 바빠서 임신이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내 가임력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 무렵 시어머니는 유난히 더 자주. 나에게 '몸이 차가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겨울이었고 실제로 내 손발은 차가웠다. 나를 본 시어머니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약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몸이 차가워 보인다'라고 말했던 건, 차가운 내 손과 발을 염려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그건 '몸이 차가운 사람은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라는 뜻이었다. 산부인과 교과서 어디에도 불임인 여성이 손발이 차갑다는 얘기는 없었다. 손발의 차가움과 불임의 연관성에 대해 믿지는 않았지만,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내가 손발이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가당치 않은 소리였겠지만. 내 손발이 차갑고 한 번도 임신을 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임신이 되지 않는 건 온전히 내 탓인 것만 같았다.
11월. 내과 전문의 시험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본격적으로 전문의 시험공부를 시작하며, 병동 업무에서 벗어나 시간이 생겼다. 전문의 자격증을 따면, 조금의 여유가 생길 테니 인생에 남겨진 큰 숙제를 시작해야 했다. 근무하던 병원의 산부인과에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초음파 검사를 하다 무언가 발견이 되었다. 자궁 내막증이었다. 자궁 내막증은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 몸이 차가워서. 나 때문에 우리 부부가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시어머니의 추측이 옳았다. 임신이 되지 않는 건 내 탓이었다.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당장에 수술이 하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불임의 원인 제공자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추운 겨울. 전공의 시험이 끝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불임의 원인이었던 자궁내막증과 이별하길. 한 겨울에 손과 발이 차가워도 임신이 될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바랐다.
결혼만 하면 곧 임신이 되는 것처럼. 불임의 원인이었던 자궁내막증 수술만 하면 곧바로 임신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식은 없었다. 그렇게 또 1년의 세월은 무심하게도 흘러갔다.
다시 또 지겨운 손발 차가운 계절 겨울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남편이었다. 내가 수술을 받고도 임신이 되지 않자, 나 몰래 비뇨기과를 다닌 지 한 달째라고 했다. 남편에게도 불임의 원인이 발견되었다. '다행이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모든 건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지가 생겼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 동지가 다름아닌 남편이라니.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는데 다행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정말 다행이었다. 더 이상 내 손발의 차가움과 불임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한 겨울에도 '춥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들의 소식을 알게 된 시어머니는 더 이상 내게 '몸이 차가워 보인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손과 발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나에게 몸이 차가워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겨울이었는데도 그런 소리를 듣지 않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남편은 여전히 차가운 내 손을 잡고, 나는 따뜻한 남편의 체온을 전해 받으며. 우리는 불임 클리닉에 문을 두드렸다.
정상적인 부부의 경우 90%는 피임을 하지 않으면 1년 이내에 아기가 생긴다. 1년간 피임 없이 정상적인 관계를 지속했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이를 불임(sterility)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임신이 안된다는 불임이라는 단어보다 임신이 어려운 상태를 뜻하는 난임(subfertile)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한다. 난임 시술의 발달로 불임이었던 경우도 결국에는 임신이 되기 때문이다.
난임의 원인은 다양하다. 난임의 알려진 원인으로 남성이 원인인 경우가 25~40%, 여성은 40~55%다. 여성 쪽 원인이 조금 더 많긴 하지만, 남성에서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우리 부부처럼 남성과 여성 둘 다 문제인 경우는 전체 불임의 10% 나 된다. 나머지 10%는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경우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이뤄져야 임신이 되듯. 난임이 의심될 때 어느 한쪽의 문제만으로 몰아서는 안된다. 난자와 정자는 동시에 의심받아야 한다. 난임의 원인이 남편 혹은 아내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그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부가 된 인연으로 그 모든 건 부부의 문제인 것이다. 부부에게 주어진 문제를 부부가 함께 풀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