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낳았다. 아기를 출산하면서 걱정도 함께 낳았다. 걱정을 낳은 덕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붉은 피부. 콧구멍이 없었다면 코였는지 모를 낮은 콧대. 퉁퉁 부어있는 눈을 보며 평생 이 외모로 살아갈 모습을 상상하며 속을 태웠다. 바늘로 찔러놓은 듯 작은 콧구멍에 아기의 숨이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밤새 틈틈히 코 아래에 손을 가져다 대고 날숨을 확인하느라 눈 붙일 겨를이 없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아기가 살아갈 세상의 무게도 걱정되었다. 성인이 된 나에게도 버거운 세상을 나약한 아기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 무게를 대신 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아기를 염려하는 마음은 눈물로 바뀌었다. 출산 직후부터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처음만 해도 그것은 나만 아는 눈물이었다. 눈물은 오롯이 혼자 있을 때만 떨어졌다. 샤워 물줄기에 부풀어 오르는 낯선 가슴을 보며 샤워 물소리에 울음소리를 감추고, 눈물을 흘려보냈다. 마음껏 울고 싶은 마음에 하루에도 여러 번 샤워를 했다. 그곳에서는 눈물샘을 막지 않아도 괜찮았다.
출산 후 3일째 되던 날 눈물은 본색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부고 소식은 나의 울음은 한층 더 고양시켰다. 나는 할머니에게 첫 손녀였다. 할머니에게 영원한 강아지였던 내가 첫 딸을 낳아 할머니에게 소개할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출산 한 내 소식을 전해 받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식사 중 사레에 들려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손녀가 내과 의사였는데도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그렇게 황망하게 떠났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날. 산모라는 이유로 배웅조차 하지 못하는 내 상황이 한스러웠다.
한쪽에서는 생명이 태어나고, 다른 쪽에서는 삶이 마감되었다. 양쪽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결국 마음 가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승자는 울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 여태 남몰래 흘리던 나만 알던 눈물이었는데. 할머니의 부고 소식으로 이제 눈물은 남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쏟아졌다.
눈물샘에 구멍이 났다. 아기를 옆에 두고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터졌다. 아기가 울 때면 안쓰러움에, 울지 않을 때는 존재 자체가 예뻐서 눈물이 흘렀다. 나의 눈물을 본 가족들은 할머니를 잃은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슬픔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지만, 나에게 찾아온 슬픔은 너무 단단해서 나를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낳고 열흘 째. 그날도 샤워를 하며 울고 있었다. 샤워기 물줄기에 흐르는 눈물을 씻겨 보내며. 문득 나를 감싸고 있던 걱정과 슬픔이 사실은 우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부인과와 정신과 교과서 사이 어디쯤에서 본것 같은 산후 우울. 그에 대한 증거를 모아봤다.
모유 수유의 지옥과 함께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출산 후 열흘 동안 단 하루도 제대로 잠을 이룬 적이 없었다. 밤새 수유를 하고, 닥치지 않은 아기의 먼 미래까지 걱정하며 불안했다. 남편, 아기와 한 방에서 잠을 자도 아기의 울음소리는 나에게만 잘 들렸다. 드르렁 코까지 골며 아기보다 더 잘 자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젖 달라고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남편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모유 수유를 고집하던 탓에 남편은 그저 방안을 서성이며 내가 일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가 무능력해보이기까지 했다. 모유는 왜 여자에게만 나오는 것인지 화가 났다.
불면, 걱정, 불안, 짜증의 근원이 우울이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출산 후 찾아온 눈물은 아기를 위한 걱정이 아니었고 우울이었다. 우울에 우연히 할머니에 대한 슬픔이 더해졌다. 우울은 걱정, 슬픔으로 포장되어 나에게 눈물을 가져다주었다. 눈물의 까닭이 산후 우울이었음을 인식하자,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남편에게 내 상황에 대해 고백했다. 내일도 운다면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야겠다고 선언했다. '네가 무슨 우울증이야.'라는 반응을 보일 줄 알았던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온갖 짜증과 눈물을 다 받아주었던 남편도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다.
당장 불면의 밤부터 해결해야 했다. 밤샘 모유 수유는 포기했다. 모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남편에게 분유를 부탁했다. 예민해진 귀를 가리기 위해 아기방과 다섯 걸음 떨어진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그날 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않은 덕에 5시간을 내리 잠을 잘 수 있었다. 출산하고 처음이었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해가 뜨고 커튼을 쳤다. 주책없이 흐르던 눈물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우울을 포장했던 검푸른 슬픔도 사라지고 없었다. 무거웠던 기분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씩씩했던 나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운이 좋았다. 나에게 찾아온 산후 우울은 열흘만에 스스로 자취를 감췄다.
출산의 기쁨과 고통. 아이를 낳은 후 세상에 가장 큰 행복을 얻은 순간에 마주한 우울. 출산 후 가장 기뻐야 할 순간에 우울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니. 그건 아기를 낳지 않았으면 결코 몰랐을 행복한 우울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우울도 자신의 의지대로 극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아기를 얻은 행복을 우울이 지배하지 않도록 우울을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의 지지다. 임신, 출산을 겪으며 급격한 변화를 겪은 산모에게 육아의 짐까지 더하는 것은 가혹하다. 그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은 곁에 있는 가족뿐이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의 도움으로 산모에게 지워진 우울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행복했던 우울에서 행복만 남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