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키드니 Jun 20. 2021

그것이 기적인 줄 몰랐다.

이 세상 모든 둘째들은 인간이 가진 본능 ‘망각’ 덕분이다. 


아기가 돌 무렵이 되자, 둘째 생각이 간절했다. 고생했던 지난날은 모두 사라졌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하나 더 갖고 싶었다. 첫째를 키우며 알게 된 주변인들의 둘째 임신 소식도 마음에 불을 지폈다. 첫아이를 자연 임신으로 얻었지만 애초에 임신이 힘들다고 했던 난임 센터를 다시 방문했다. 모든 검사는 2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몇 가지 검사가 새로 진행했다. 2년이라는 세월은 여자의 생식 능력이 감소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늙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부부의 정자와 난자는 생식 능력이 부쩍 감소해있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내밀었다. 자연임신을 기대하기보다 곧바로 시험관 시술을 할 것을 권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앞뒤 재 볼 것 없이 바로 시험관 시술이 시작되었다. 그 무렵 미국에 거주하는 첫째 형님도 시험관 시술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본격적인 난임 시술 전에 미국 형님의 난자 채취 소식부터 들려왔다. 태평양 건너 먼 곳에 있는 형님의 난자 채취 소식이 이곳 대한민국에까지 전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난자 15개 채취했대.” 


우연히 알게된 소식이었다. 결코 형님이 채취한 난자의 개수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마흔이 훌쩍 넘은 형님에게 그렇게 많은 수의 난자가 채취되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미국 형님이 궁금했다. '도대체 뭘 드셨길래.' 


며느리가 채취한 난자 개수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첫째 며느리와 막내며느리의 난자 배틀이 시작된 것이다. 시험관 시술 전에 나는 나의 난자가 더 많이 채취될 거라 예상했다. 나의 생식능력이 더 우월할 것이라는 것은 괜한 허풍이 아니다. 난소 기능은 나이가 증가할수록 떨어진다. 내가 형님보다 10살이나 어리니, 내가 가지는 자신(自信)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믿음이었다.


며칠간 잘 키워온 난자를 채취하는 날이었다. 아픈 곳은 없지만, 밑이 뚫린 환자복을 입고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마취 후 난자를 채취하고 회복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마취 기운이 덜 풀린 가운데 난자를 채취한 산부인과 의사가 내 곁에 왔다. 5개의 난자가 채취되었단다. 완패였다. 10년이나 어린 내가 형님보다 많은 개수의 난자를 뽑아낼 수 있을 거라는 것은 자만이었다.


인생에서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은 것 없었다. 난자 역시 그렇다. 한 번에 15개를 얻었다는 미국의 형님. 그건 내가 어떤 것을 해도 형님의 능력을 뒤쫓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험관 시술을 여러 번 하는 것뿐이었다. 한 번에 5개의 난자를 얻을 수 있는 몸이라면 시험관 시술을 3번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난자의 개수는 의미가 없었다. 오직 하나의 배아만 내게 무사히 착상이 되면 끝이다. 내게 채취된 난자 5개가 남편의 정자와 만나 몇 개의 배아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완성된 배아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세 번의 시험관 시술이 석 달 간격으로 계속되었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열심히 난자를 채취했지만, 어느 것 하나 다시 내 자궁에 착상되는 일은 없었다. 힘들게 얻은 난자 모두가 자취를 감추었다. ‘안녕 잘 가, 나의 난자들.’


미국 형님은 처음에 채취한 15개의 난자에서 여러 개의 배아를 얻었다. 그중 세 개의 배아를 이식했고 임신에 성공했다. 세개의 배아 모두 안전하게 착상되었다. 난자 생식 능력에 더해 착상까지 잘되다니행운은 한 사람에게만 몰아치는 경향이 있다. 미국 형님이 부러웠다. 또 다시 형님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뭘 드셨길래.'   


세 번의 시험관 시술을 하다 보니 1년의 세월은 금방이었다. 오롯이 시험관 시술에만 충만한 1년이었다. 세 번째 시험관 시술을 마지막으로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시험관 시술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 임신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험관 시술을 준비했지만, 우연히 자연임신이 되었다는 우리의 사연에 산부인과 의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첫째가 있다고 했지요. 이런 결과에 임신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 아이 매우 똑똑하지요? 세상에는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어요.”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 그것은 기적이고, 내 아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하늘은 아기를 선물함으로써 내가 틀렸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때는 그것이 기적인 줄 몰랐다. 노력하면 내게 또다시 아기가 올 줄 알았다. 또다시 내가 틀렸다. 그리 자주 오는 것이 기적이라면, 그건 기적이 아니다. 


망각이라는 본능으로 둘째를 가지려고 했다. 그보다 먼저 내가 잊은 것이 있었다. 둘째를 가지기 위해 애쓰며 깨달았다. 지금 곁에 있는 아이의 탄생이 얼마나 귀한 일이었으며, 기적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1년 동안 세 번의 시험관 시술로 나는 난자 몇 개와 곁에 있는 내 아이에 대한 소중함을 얻었다. 기적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이 아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