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영이 그토록 어려웠다. 배영은 수영 초급자부터 허용되는 영법이지만, 배영만큼은 만년 초급이었다. 배영을 할때면 수영 강사는 나에게 힘 좀 빼라고 했다. 애쓰는 것, 몸에 힘주는 것은 잘할 자신 있어도 힘은 어떻게 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힘을 빼자’고 다짐할수록 몸은 더 뻣뻣해져만 갔다. 힘을 뺀다는 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3월은 새로운 시작이고 출발이다. 지긋지긋하던 대학병원에서의 수련이 끝났다. 이제 더 이상 응급실 전화는 울리지 않고, 아침 회진 시간에 나를 쪼는 사람은 없다. 대신 아침 시간의 대부분을 산부인과 5번 방 앞에서 대기하며 보내고 있었다. 3월 나의 새로운 시작은 산부인과 난임 클리닉에서였다. 난임 클리닉으로 유명한 J 병원 산부인과는 예약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난임 클리닉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을 몰랐다. 몇 번의 진료 끝에, 남편의 문제에 나의 문제가 더해져 곧바로 시험관 시술을 들어가기로 했다. 시험관 시술에 대한 대략적인 과정을 찾아봤다. 아내가 수개월간 수차례 병원을 방문할 동안 남편은 기껏해야 한번. 잠깐 얼굴만 비추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한 시간이 채 되는 않는 시간이었다. 모 TV 프로그램에서 어르신이 여자가 임신, 출산하는데 남자는 ‘기분만 냈지.’라는 말이 맞았다. 임신, 출산은 여자만 분주한 일이었다. 다만, 우리 부부에게는 유전자 문제가 추가로 발견되어 남들보다 느리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유전자를 찾고 검사하는 데만 1년이 걸린다고 했다.
여자만 바쁜 난임 일정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병원에 취직할 수는 없었다. 눈치만 보다가 시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이참에 쉴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쉬면 아쉬운 일당 생각에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마침 선배 병원에 임시 파트타임 자리가 나왔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만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선배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가진 여자 의사였다. 선배는 아이가 하원 하는 오후 시간이 필요한 반면, 나는 오전 시간이 필요했다. 산부인과 진료, 검사, 난자 채취의 시술 대부분이 오전에 이뤄지기 때문에 서로의 필요에 꼭 맞는 일자리였다.
대학병원에서의 빡빡한 삶에서 나의 하루는 산부인과 일정과 파트타임 일자리로 대체되었다. 전보다 여유로운 삶의 빈틈은 온라인 세계가 채워주었다. 시험관 시술의 찐 정보를 얻기 위해 난임 카페에 가입했다. 정석대로 쓰여있는 딱딱한 교과서보다 직접 겪은 이들의 생생한 경험이 더 도움이 되는 법이다. 출퇴근 시간 내내, 산부인과 진료실 앞 대기하는 많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난임 카페에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시험관, 인공 수정, 자연임신으로 임신에 성공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도 그들처럼 성공 후기를 쓰기를 바랐다.
난임에서 탈출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모든 걸 내려놓으니 임신이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내려놓은 적 없었던 삶에서 내려놓으라는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려놓음이 포기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면 그건 내가 결코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포기’ 하기엔 모든 것이 간절했다. 하루라도 빨리 파트타임 일자리에서 벗어나 안정된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임신, 출산이라는 긴 터널에서 입구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쉬워질 거라는 건 알지만, 그건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려놓는다는 건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본격적인 난임 스케줄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부부는 단단히 준비했다. 길고 긴 스케줄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달간 여행을 가기로 했다. 부부가 함께 긴 여행을 간 것은 처음이었다. 선배 병원에 양해를 구하고, 미국 서부를 여행했다. 여유 없이 지내던 삶에서 오랜만에 느껴본 쉼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운동을 시작했다. 출근하기 전까지 운동을 하고, 문화센터에 요리 강습도 받고, 그림을 그리러 다녔다. 산부인과와 파트타임이라는 두 가지 단출한 삶에서 내 삶은 다양해졌다. 하루 스쿼트 100개를 하는데 집중하고, 크로켓 만드는 법을 배워 집에서 시연했다. 남은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온라인 세계를 탐독할 시간은 부족해졌다. 들락거리던 난임 카페도 드문드문 들어가기 시작했다. 노느라 바빠서 인생에 틈은 없었다. 파트타임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기약 없는 산부인과 스케줄에 천천히 가자고 마음먹었다. 마침 가고 싶었던 병원에서 풀타임 의사를 구한다고 연락이 왔다. 흔쾌히 수락을 했다.
정해진 시험관 아기 스케줄 내원 하루 전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오지 않은지 일주일째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난생처음 임신 테스트기를 사봤다. 임신이 되지 않는 몸이었으니, 임신을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임신이라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선명하게 빨간 두 줄. ‘말도 안 돼. 남편과 나는 자연 임신이 힘들다고 했는데…’
인생에 빡빡한 틈을 비집고 아기가 찾아왔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난임 카페에서 임신에 성공한 사람들이 떠들던 ‘내려놓는다는 것’의 의미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되지도 않은 일에 애쓰는 것보다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온전히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몸을 쓰는 일이 좋다. 몸을 쓰면 자연스레 마음이 덜 가게 된다. 몸을 쓰는 건강한 삶을 바탕으로 다른 것에 집중하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내려놓으세요’라는 말의 참뜻이었다.
그토록 어려웠던 배영. ‘내려놓으세요’와 ‘힘 빼는 것’이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나는 다른 것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힘을 뺀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호흡과 발차기, 팔 돌리기에 집중해보았다. 그런 것들에 신경 쓰느라 나는 내 몸에 힘쓸 겨를이 없었다. 어느덧 몸이 유연해지고 배영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려놓는다, 힘을 뺀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