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질병의 첫 진단은 충격이다. 어느새 돌아보면 다들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 나머지 삶을 살아간다. 일상으로 돌아간 환자는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나도 그랬다. 환자가 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전공의 과정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인턴 직후 1년간의 휴식은 모든 걸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고통은 이미 과거의 것이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너무나 건강하다고 착각했다. 난이도 10점 (10점 만점)이라는 내과 의사의 길을 굳이 제 발로 찾아갔다. 내과는 의학 교과서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과목 었다. 내과 의사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뒤를 봐줄 이들도 있었다. 1년 늦게 내과 전공의를 택했기 때문에 윗년차들이 대부분 나의 동기들이었다. 수년간 알고 지내던 그들과의 관계가 좋았던 나는 바랐다. 나에게만은 예외적으로 잘해주기를. 하지만 상명하복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 병원에 나올 수 있어?’ 정식 근무 날짜가 한참 남았음에도 언제 병원에 들어와서 일할 거냐고 독촉 전화를 한 건 다름 아닌 그들. 나의 의대 동기들이었다.
전공의는 단순 전문직 의사가 아닌 다른 부류로 분류되어야 한다. 특히 모든 과의 전공의 1년 차는 전문 지식인보다는 육체노동자의 삶에 가깝다. 의사라는 직분에 더해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내과 1년 차로 소화기내과가 배정되었다. 그날로 100일간의 에브리데이 당직이 시작되었다. 매일 당직이었다. 잠 못 자고 밥 못 먹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인턴은 큰 병원의 구멍을 메우는 사람으로 병원의 잡무만 하면 끝이었지만, 내과 1년 차는 그 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이었다. 낮에는 병동 주치의로서 환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밤에는 당직의사로서 병원 전체를 막았다. 응급실, 중환자실, 병원 내 모든 응급상황에 내과 1년 차는 투입되었다. 100일 동안 낮과 밤. 시시때때로.
100일 당직이 끝나갈 무렵 임계점에 다다른 몸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잠잠할 때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그 질병은 화를 낼 때는 불같았다. 또다시 복통과 혈변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턴과 달리 전공의는 병동 주치의가 되었기 때문에 화장실 방문 시간을 조절할 여유가 없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교수님과의 병동 회진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교수님과 함께하는 회진 시간에 우리는 모든 것을 금한다. 1년 차는 의료진의 앞잡이로서 병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고 맨 앞에서 그 길을 안내한다. 회진을 도는 인원 전부가 전반적인 환자의 치료 계획과 설명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집중한다.
하지만 나의 복통은 눈치가 없었다. 오전, 오후 대략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만 참으면 되는 것인데도 그새를 참지 못했다. 급하면 실례를 무릅쓰고 환자들의 화장실을 침범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역부족이었다. 속옷을 버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패드를 하고 회진을 돌아야 했다.
아슬아슬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환자 생활이 터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속옷이 아닌 바지였다. 의지대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교수님과의 회진 시간에는 모든 것을 금하지만, 나는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젊은 여자 교수님이었고, 나를 혼낼 윗년차도 자리에 없었다. 회진을 돌던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숙소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그동안 눈에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교수님이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염려의 눈빛을 보냈다. 이때다 싶어 그동안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수님은 당장 검사를 해자고 했다. 나는 제발 이곳에서만은 안된다며 난감함을 표했다. 당장 검사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모두가 알게 된다. 내시경 실의 간호사, 윗년차 선배들, 매일 아침저녁으로 회진을 돌고 있는 내과 교수님들.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혈액검사로 간단하게 알아내면 되는 질병이 아닌, 대장 내시경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내 질병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4년이나 더 봐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그들에게 첫인사를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도움을 주면 될까’라는 질문에, 인턴 때 진단받았던 본원에 가서 검사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교수님은 본원에 있는 또 다른 교수에게 나의 상황을 전하고, 예약 스케줄 잡는 것을 도와주었다. 윗년차 치프 전공의에게는 ‘연구 샘플 전달을 위해 1년 차 선생을 본원에 보내야겠어.’라며 자리를 비워야 하는 나를 위한 핑계를 만들어 주었다.
내과 1년 차의 시작, 100일 당직이 끝나갈 즘에 나의 병은 다시 발병되었다. 재발이 시작되었다.
나의 모든 시작에는 재발이 있었다. 1년 차의 시작부터 2년 차 시작. 치프 전공의의 시작. 봉직 의사의 시작. 그리고 엄마의 시작까지. 십여 년이 넘는 의사의 삶에 매 중요한 순간마다 그것은 깊숙하게 들어와 존재감을 드러냈다. 재발이라는 공포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