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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Jun 28. 2021

실망이 뭐 어때서

선생님, 어디 아프세요?


새벽 5시. 외부로 연결된 응급실 주 출입구를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병동, 응급실에서 종종거리며 다니던 내과 전공의가 환자로 접수를 하자 다들 의아한 표정이다. 수년간 내과 전공의로 참고 견디는 삶을 살았다. 그 결과 나는 괜찮은 전공의, 성실하다는 이미지를 얻었다. 그 밑바탕에는 건강한 삶이 깔려 있어야 했지만, 나는 건강한 삶을 살고 있지 못했다.


내과 3년 차 말. 치프 레지던트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때였다. 나를 향한 기대감에 잘해야겠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 낮 동안 해결해야 할 환자, 밤새 울리는 응급실 전화로 체력마저 고갈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재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나의 아픔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첫 진단에서 두 번째 재발까지 모두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남몰래 진료를 보고 검사를 받고 약을 먹었다. 전공의 하나 아픈 것이 국가 일급비밀도 아닌데 뭐 그리 유난이었냐고 할 수 있다. 동료, 선후배 그리고 교수님들에게 괜찮은 전공의였던 나의 평가에 흠을 내어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실수하거나 실망스러운 일을 했을 때 '쟤는 아프니까’라는 예외를 두 길 원치 않았다. 행여나 들킬까 봐 더 철저하게 이를 악물며 힘든 시간을 견뎌내었다.


세 번째 재발에서 나는 숨겨왔던 나의 병력을 드러 낼 수밖에 없었다. 감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응급실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모두가 내가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는 아픈 전공의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아침 동이 틀 무렵으로 응급실 내원 시간을 정한 것은 내과 응급실 당직의사에 대한 배려였다. 몇 주 전부터 증상은 시작되었고, 이미 수많은 밤을 참아왔다. 내가 밤새 몇 시간만 참으면, 오늘 내과 당직의사는 조금 더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아침 회진이 시작되기 직전이 적당해 보였다. 그 시간은 바로 새벽 5시였다. 당직의사의 수면시간까지 고려해 응급실을 방문하는. 이토록 배려심 돋는 환자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응급실 B 구역 5번 자리에 배정받았다. 하얀 시트가 새로 깔린 침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흰색 가운을 입고 쳐다만 보았던 그 자리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복통에 배를 움켜쥐고 겨우 환자를 진찰해 냈던 곳. 마땅히 환자를 위한 자리였던 그곳을 내가 차지하는 것이 영 어색했다. 침대에 눕지 못하고 대충 걸 터 앉았다. 나를 진찰할 당직의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 내과 응급실 당직의사는 누구려나.’


나를 진찰하러 온 사람은 2년 차 L 양이었다. 그녀는 그 연차에서 뛰어난 에이스다. 우리는 동갑에 같은 학교를 나오고 수년간 얼굴을 보며 알고 지내던 사이다. L 양은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짐작하건대, 아침 회진을 준비하던 그녀는 내 이름이 응급실 명단에 뜨자 나의 지저분한 진료 차트를 열어 보았을 것이다. 첫 진단과 두어 차례의 재발을 확인하고 환자인 나를 진찰하기 위해 전공의 숙소에서 응급실로 한달음에 뛰어왔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그동안 아팠는지 몰랐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아주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먼 사이도 아닌 그녀가 나를 위해 울었다. 배를 쥐어짜는 고통을 겪음에도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보던 나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것도 병원에서 다른 사람 앞에서. 그녀의 눈물, 나의 아픔에 공감해 주는 그녀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우리 둘은 커튼 속 침대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나는 L 양이 걱정되었다. 회진을 돌아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그만 눈물을 닦고 가보라고 했다. 종종거리며 병동으로 향하는 L 양을 보았다. 나는 에이스로 통하는 L 양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자타 공인 에이스는 속은 썩어 들어가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종종 거리며 산다. L 양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안쓰러웠다.


입원장을 발부받았다. 병실을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의사 신분으로는 결코 침대에 누울 수 없었지만, 환자가 되고 나니 병실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교수님들과 동료, 동기들의 병문안이 이어졌다. 내가 의사였을 때 내게 기대했던 눈빛은 사라졌다. 그 대신 모두가 환자가 된 나를 안타까워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실망의 눈빛은 아니었다.


의사의 세계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이과생으로 언어 감각이 아둔했던 나는 실망과 실수를 혼동했다. 내가 저지를지도 모르는 실수와 남들이 내게 하는 실망 모두가 두려웠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실’ 자만 봐도 몸이 움츠러들었다.


실망이란, 희망이나 명망을 잃는 것. 또는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상하는 것을 말한다. 실수를 하거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타인이 내게 기대하는 바에 기꺼이 부응하고, 힘겹게 쌓아온 명망을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환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동안 나에 대한 성실함이 평가절하되거나, 본분을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확인되었다. 


퇴원 후 '괜찮니?'라는 인사말과 함께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 대한 기대 또한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내과 사람들 독하다 정말.



실수는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것이지만, 실망은 타인의 몫이다. 실수는 경계하되, 타인을 실망시키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내 딴에는 실수 없이 쓰인 이 글을 보고 누군가는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타인이 내게 실망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므로 용기 내어 이 글을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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