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한테 오해를 받았을 때
오해를 풀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매일매일 기도했다.
하지만 신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 대신 신은 나에게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담대함을 주셨다.
극소심이인 나는 남들의 의견이나 평가에 많이 휘둘리는 성격이다. 그래서인지 내 스스로 나를 칭찬하는 것보다 남에게 칭찬받는 것이 훨씬 더 나에게 기쁨을 준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안타까운 것은 반대의 상황이다. 내 스스로 나를 자책하는 것보다 남에게 미움받거나 지적받는 것이 훨씬 더 큰 슬픔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인의 의견에 잘 휘둘리는 나에게 있어 다수의 사람들한테 오해를 받았던 시기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정말 큰 실수를 저질러서 남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것이라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정도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법적인 일을 행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떤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기준에 나의 행동이 좀 거슬렸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억울함 반, 슬픔 반인 심정으로 나에 대한 오해가 풀릴 수 있게 노력했다. 그러나 안 좋은 소문과 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가십거리가 되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 조차 나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나를 대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을 견뎌 내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나는 이만한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억울하고 힘든 일이 펼쳐졌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라고 했던가. 이미 퍼져나간 말들은 더 이상 나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 시기에 나는 신께 기도를 시작했다. 오해를 풀 수 있게 도와달라고, 내가 타인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이웃과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렇게 여러 가지로 기도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일 다시 그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달라진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이 집단을 떠나야만, 이 사람들로부터 멀어져야만 이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도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근거 없는 타인의 말들로 인해 내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끝까지 버텨보기로 결심했다. 매일 상처받고 혼자 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언제 이 슬픔이 끝날 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디를 가도 나를 향한 근거 없는 소문들이 따라올 것만 같아 무서웠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나 스스로도 이전보다 예민해졌음을 느꼈다. 이게 제일 바닥일 줄 알았는데 그 밑에 또 지하가 있었고, 또 지하가 있었다. 그렇게 지하를 파고들던 때, 나는 나의 생각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땐 너무 심각하고 두려웠던 일들이, 글을 통해 풀어나가니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내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었고,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타인에 대한 기대를 멈추었다. 밤마다 우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나에게 들려오던 또 다른 이들의 소문들도 많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누구에게도 전혀 발전적이지 않은, 한낱 가십거리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 대해 안쓰러움과 가벼움이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담담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서서히 아주 조금씩 나아졌던 것 같다.
점차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고, 누가 나를 선입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보더라도 그러려니 했다. 그 사람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가 필요한 말을 했고, 묵묵히 나의 몫을 해나갔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니 소문은 희미해졌고,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던 나는 일상에 잘 적응해 나갔다. 그 뒤로는 나의 행복과 슬픔의 주체를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두지 않았다. 타인의 말은 더 이상 나에게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내가 누군가를 볼 때에도 근거 없는 말들에서 만들어진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을 보지 않게 되었다. 나의 몫을 해내고, 나의 일을 묵묵히 해나감으로써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지도, 사랑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밤마다 울지 않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바랬던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도 울지도 않게 된 결과가 오히려 더 좋았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조금은 슬플 수도 있지만 나는 이를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