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옛날, 갓 대학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쯤 여름박학에 갑자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친구가 이틀 뒤에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끊어놨으니 공항으로 나와라고 하였다. 내 몫의 표까지 예약해뒀으니 몸만 오면 된다고. 나는 그래서 그냥 친구들끼리 놀러가는가보다 해서 아무 의심 없이 공항에 나가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는 비행기 안에서야 우리의 계획을 물어봤는데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당시 자전거 여행이라고 했을 때 나는 한강에서 타는 자전거 같이 잠깐 타다가 내려서 라면 하나 끓여먹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나란히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줄 았았다. 다가오는 나의 미래를 모른 채.
공항에서 내려서 픽업을 나온 밴을 타고 자전거 대여점으로 갔다. 나는 하루 이틀 정도 자전거를 탈 줄 알았는데 친구가 잠깐 타는 것이 아니고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겠다고 했다. 이건 내가 전혀 예상하던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라니?제대로 옷도 안 가져오고 준비도 하나도 안되어있었는데. 그래도 친구들이 다 같이 있으니 나름 든든하기도 하고 젊은 날의 패기로 타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식하게 자전거를 탔다. 지금과 같이 제주도에 길이 잘 되어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라이딩에 대한 기초 지식도 모를 때라서 헬멧도 없었고 야간에는 후사경이나 라이트도 없이 자전거를 탔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를 탄지 두시간만에 친구 한명이 넘어져서 무릎에 열상을 입어 부축할 친구 한명과 같이 낙오 되었다. 남은 멤버들이라도 자전거 일주를 하겠다고 다짐을 하여 낙오된 친구들을 뒤로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제주도에 여행을 가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제주도에는 굉장히 오름이 많다는 것을. 차를 타고 가면 그것이 멋진 풍경이 되는데 자전거로 가면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극기 훈련 코스가 된다. 자전거를 오래 탔던 사람도 아니었기도 하고 오랫동안 탈 수 있는 좋은 자전거도 아니었기 때문에 체력이 한창 좋을 때였지만 그래도 그 오르막들은 너무나 힘들었다. 힘들게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거나 낑낑대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하는 언덕들도 있었지만 그 순간을 넘어가면 또 내리막길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제주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언덕에서 내려가는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내리막의 끝자락에 다가서면 눈 앞에 또 다른 커다란 오름이 눈 앞을 가로막는다. 그 때부터는 또 ‘어떻게 이 언덕을 또 넘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수차례에서 수십차례 그런 크고 작은 언덕을 넘으며 기분의 업다운을 느끼며 당시 다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뭔가 우리의 인생 같다고 생각을 했다. 힘든 언덕을 올라갈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지만 조금만 더 가면 내리막이 금방 나오고 내리막길을 갈때는 기분이 좋지만 또 금방 오르막이 나온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는 받아들이게 되면 오르막이 덜 힘들기도 하고 내리막에서는 너무 들뜨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도 힘든 일이 있으면 제주도의 그 수많은 오름들이 생각난다. 지금 나는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고 힘들지만 아주 조금씩 전진하다보면 언젠가는 꼭대기가 나오게 되고 그 뒤부터는 또 내리막이 있을 것이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은 상대적으로 빨리 끝나지만 그만큼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또 내리막의 끝에서는 오르막을 올라가기 위해 힘차게 페달을 밟아야 하며 이 과정이 한두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인생은 제주도의 오름과 참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