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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Dr MCT Feb 06. 2024

정신과 의사는 화를 어떻게 다스리는가

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0)

'선생님은 화 안 내세요? 사람이면 다 화를 내잖아요?’

‘선생님은 화날 때 어떻게 하세요?’


레지던트 시절부터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던 질문 중 하나이다. 화나는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몰라서 물어보기도 하고 본인이 화난 상황에 대해 합리화하고 싶어서 물어보기도 한다. 때로는 정신과의사로서 얼마나 자격이 있는지 테스트하려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화날 때가 있다. 보통 한 가지 일 때문에 화가 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 원인이 겹쳤을 때 쌓인 분노가 폭발한다. 나의 경우에는 날씨의 영향을 받는 편인데 며칠 동안 해를 보지 못하면 예민해진다. 일이 많고 잠을 못 자는 상황까지 겹치면 화나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럴 때 누군가 별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면 나도 화가 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통제를 잘하는 편이다. 태어나기를 무던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나름의 노력과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웬만한 상황에서는 무던하다. 잘 참기도 하고, 상황에 대한 객관화가 잘 되어서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화를 내는 상황은 많지 않다.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화가 나는 것’은 마음속 감정의 동요가 있는 상태이다. 반면 ‘화를 내는 것’은 감정이 행동까지 이어진 상태이다. 보통은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 사이에는 짧은 틈이 있다. 나는 이 틈을 ‘분노의 골든타임’이라고 부른다. ‘분노의 골든타임’이 매우 짧은 사람은 금방 화를 내지만 긴 사람은 ‘화가 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분노의 골든타임’을 오래 유지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화가 나는 것’을 잘 인지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인지부터 시작한다. 우선 스스로 화난 상태를 인지해야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 화가 난 상태는 신체적 신호를 준다. 우리 몸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빨개지는 신체 반응으로 화난 상태를 알린다. 시야가 좁아지고,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상태도 비슷한 신호이다. 이러한 신호를 잘 인지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적절한 호흡을 하는 방법이다. 호흡법은 불안, 분노 등을 조절하기 위해 여러 인지행동치료에서 사용하는 쉽고 빠른 수단이다. 너무 단순한 방법이라 그 효능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의학적으로 증명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인터넷에 여러 가지 호흡법이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2번 들이쉬고 1번 내쉬는 방법이다. 빠르게 2번 연속 1~2초 내외에 코로 들이쉬고 3~4초에 걸쳐 입으로 한숨 쉬듯 내쉬면 된다. 이 호흡법으로 잘못된 충동적 결정을 상당히 예방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평소에 화가 나지 않도록 준비하는 습관을 들이는 방법이다. 예민해지고 화가 잘 나는 상태는 불면, 부적절한 식사, 불규칙한 생활 습관 등에 의해 유발된다. 나는 화가 많이 나는 날이면 그 전날 수면 시간이 부족했는지,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10번 중 7번은 그런 날인 경우가 많다. 공복 상태는 사람을 예민하게 한다. 또 평소에 해야 할 일을 미루면 뇌에 과부하가 걸려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태를 만든다. 따라서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자잘하게 신경 쓰이는 일을 제때 하면 ‘화를 내는 것’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요즘은 마치 세상이 나를 화내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듯하다. 미디어에서의 잘난 사람들과의 비교로 나의 생활을 비참하게 만들고,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에 신경이 곤두선다. 나의 불행과 불만은 마치 나의 무능력과 노력 부족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세상에서 화가 안 나기가 오히려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결국 그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행위이다. 화가 나면 나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오늘도 모두 화내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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