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25)
의대를 진학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알바는 과외이다. 나 역시도 잠깐이지만 예과 시절 수학 과외를 한 적 있다. 하지만 과외를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정도로 많이 아는 걸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분명 학문적 깊이 혹은 수능에 관한 지식은 유명한 인터넷 강사들 혹은 유명한 학원 강사들이 더 깊을 텐데 말이다. 아마 나에게 자식의 교육을 맡긴 학부모님들은 지식 자체보다는 ‘공부를 잘하는 비법’을 가르쳐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했다. 예과 시절 이후에도 나는 십 년 넘게 공부했고 지금도 꾸준히 전공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은 공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내가 경험적으로 느낀 또 뇌과학적으로 증명된 ‘공부 잘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농구 선수 중 마이클 조던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 그의 성공적인 커리어 내내 남긴 어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실패에 관한 말이 아주 인상 깊다.
나는 지금까지 9000번도 넘게 슛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300번도 넘게 경기에서 져봤다.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었을 땐, 26번이나 슛을 실패했다. 나는 계속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그는 실패를 부끄러워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운 학습과 성공의 발판으로 봤을 뿐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뻔한 격언으로 때우려는 것이 아니다. 실패에 대해 부정하고 회피하는 정신 승리가 필요하다는 말도 아니다. 실패라는 개념 자체를 우리는 다르게 봐야 한다는 말이다.
‘실패를 통해 배운다’라는 말은 실패에 대한 과소평가이다. 실패 자체가 바로 학습이다. 어린아이가 조그마한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이는 처음에는 숟가락을 입속으로 조준하지 못해 사방에 밥을 흘리면서 먹는다. 수많은 실패를 하며 결국에는 숟가락과 팔의 올바른 조정법을 찾아낸다. 이 학습법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유효하다. 실패할 때 해당 행위나 지식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되며 실패를 할 때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학습한다. 실패를 통한 미세한 조정 없이 이루어진 학습은 단순 기억을 입출력하는 일이며 이마저도 선천적인 기억력이 부족하다면 효율이 매우 낮다.
이 과학적인 근거를 몰랐던 수험생 시절의 나도 다양한 노력 끝에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문제를 많이 틀리면 더 많이 학습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최대한 많은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힘들었고 지금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실패 없이는 학습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담담해질 수 있었다.
이 사실은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류의 학습에도 적용된다. 무엇을 빨리 습득하고 싶다면 정답 맞히기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고 실패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추고 실패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가던 길을 가는 자세가 빠른 학습의 지름길이다. 성공과 실패는 단지 인생이라는 길 위에 흩뿌려진 이정표 같은 개념이다. 실패라는 이정표 뒤에도 길은 이어지며 오히려 그 길이 지름길일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