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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32)

by 정신과 의사 Dr MCT

저는 게임에 대한 흥미가 이전보다 많이 식었지만 기대작이 나오면 아직도 가끔 게임을 즐기는 편입니다. 물론 체력적 이슈와 반응의 저하로 밤을 새우거나, 엄청난 경쟁을 하며 게임을 즐기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새로운 세계로의 탐방은 저를 아직도 설레게 합니다. 얼마 전에는 ‘올해의 게임’상을 받은 ‘엘든 링’이라는 게임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적 있습니다. 이 게임은 굉장히 방대한 스토리와 아주 높은 자유도가 있었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임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동안 정해준 틀을 따르는 게임만 하던 터라 너무 높은 자유도에 압도 당해 오히려 부담이 됐고 불편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 못 가 피곤함에 못 이겨 게임을 그만두었습니다. 이 게임을 시작한 다른 사람들도 그런 느낌을 받고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과도한 자유가 주어지면 불안함을 느끼는 현상은 게임에서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심리 검사나 놀이 치료 등에서 이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림을 통해 아이의 심리를 검사할 때 ‘무엇이든 그려도 괜찮아’라고 하 아무것도 그리지 못해 검사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사람’, ‘집’, ‘나무’와 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그릴지 정해주면 잘 그립니다. 성장에 맞지 않은 자유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은 아이를 위축되게 하거나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뿐만 아닙니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청년들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더 심해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결정을 해야 하는 대학 생활에서 불안감과 고립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가 심화되어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불안감이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질환으로 이어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통제와 억압이 필요하다거나 자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인간에게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역설적으로 자유가 우리를 위축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도 그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이 현상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가 살았던 근대 사회도 자본주의, 개인주의가 발전하며 어느 때보다 자유를 많이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런 자유에 불안감, 고립감을 느껴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런 자유의 허점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람이 히틀러였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현상을 사람들이 ‘무엇을 위한 자유’인 ‘적극적 자유’가 아니라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를 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기존의 억압과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의 자유이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소극적 자유’가 주는 불안감과 고립감에 빠지기 않기 위해 우리는 ‘적극적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나의 본능이 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떠한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모습과 세상의 모습에서 부정적인 부분들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되어야 비로소 주어진 자유를 잘 이용하고 더 많은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적극적 자유’를 찾는 일은 매우 힘듭니다. 우리가 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인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를 통제하고 억압하던 것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과 고립감을 느낀다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뒤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몸도 마음도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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