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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Dr MCT Oct 14. 2024

불행의 반대가 행복이 아니다(2)

61세 여성 미자 씨는 요즘 우울하고 잠이 오지 않아 정신과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20대 중반에 결혼하여 평생 주부로 지내며 남편과 두 자녀를 뒷바라지하였습니다. 최근 자녀들이 출가하고 남편도 퇴직하며 그녀도 이제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미자 씨는 ‘이제 나의 역할도 끝났고 그동안 힘든 뒷바라지의 보상이 시작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퇴직한 남편은 낚시나 하러 다니고 결혼한 자녀는 전화 한 통도 없습니다.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다른 남편들은 같이 여행도 다니고 손녀, 손자들이랑 화기애애한 것 같은데 나만 외롭다 느꼈습니다.  미자 씨는 그동안의 설움과 힘듦이 한꺼번에 밀려와 우울증이 생겨서 병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미자 씨도 행복을 우울을 불행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허무함이 더 컸습니다. ‘하버드는 학생들에게 행복을 가르친다’의 저자 탈 벤 샤히르는 그의 책에서 보상으로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안도감에 의한 행복’이라고 표현합니다. 부정 정서의 감소에 의한 행복 즉 아메리카노에 커피를 덜 넣으면서 단 맛을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안도감에 의한 행복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안도감은 불쾌한 경험과 힘든 일을 전제로 하므로 지속적인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미자 씨도 자녀들이 출가하거나, 남편이 퇴직할 때 약간의 안도감은 느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입시가 끝난 후에는 안도감에 의한 행복을 잠깐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전체적으로 행복해지진 않았습니다. 부정 정서는 줄었지만 긍정 정서는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죄책감이나 자책감에 빠질 위험성도 큽니다.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자신의 성취나 노력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 모두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가족이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으면 불안이나 우울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또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는 기쁨, 사랑과 같은 긍정 정서가 충만하기도 합니다. 돈도 비슷합니다. 돈은 어느 정도까지는 부정 정서를 줄여주는 완충제 역할을 하기도 하고 긍정 정서를 늘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가족의 형태에 따라서 그리고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는 달라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는 독립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미자 씨처럼 부정 정서를 줄이는데만 집중하고 있다면 반쪽짜리 행복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온전한 행복을 위해서는 부정 정서를 줄이고 한편으로는 긍정 정서를 늘려야 합니다. 미자 씨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꼈던 지난 세월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안타까워하기에는 현재의 내가 안쓰럽습니다. 남편과 자녀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족 이외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볼 수도 있고, 친구들 사귀어 볼 수도 있습니다. 활동적인 것이 싫다면 책을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가벼운 운동을 시작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몸이 안 좋아 운동이 힘들다면 명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미술관을 갈 수도 있습니다. 




부정 정서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금 당장 먹고 살 경제적 여건이 안된다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다음 주가 시험이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이 마음을 이용해서 시험공부를 해야 합니다. 몸이 불편해서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먹고살 돈도 없는데 취미를 즐긴다거나, 시험이 코 앞인데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만 한다던가, 실제로 건강에 문제가 있는데 명상으로 극복하려는 행동은 또 다른 의미에서 반쪽짜리 행복입니다. 이에 대해 전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 교수이자 몰입의 저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하루하루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싶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행복은 출발점으로서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눈앞의 부정 정서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긍정 정서만을 바라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치 수학을 배울 때 덧셈, 뺄셈을 배우고 나서야 곱셈으로 진도를 넘어가듯 부정 정서를 줄이고 나서 긍정정서를 찾으러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특정한 단계를 밟아나가고 이전 단계가 완성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인식은 근대의 여러 심리학에서 나왔습니다. 그 전형으로는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이 있습니다. 그는 각 욕구에는 단계가 있으며 이전 단계가 만족되어야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아래에는 생리적 욕구부터 시작해 안전, 애정, 존중의 욕구를 거쳐 자아실현의 욕구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은 이렇게 직렬식으로 연결되어있지 않습니다. 부정 정서를 줄이고, 긍정 정서를 늘려나가는 일은 병렬식으로 같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만 부정 정서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행위는 간단하거나 금방 이뤄지는 것들이 조금 더 많고, 긍정 정서를 늘리는 것에 도움이 되는 일은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거나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기에 부정 정서를 줄이는 것이 더 우선시 되는 경우들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행복은 보상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야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불행과 행복은 독립적이기 때문에 ‘덜 불행하기 위한 노력’과 ‘더 행복하기 위한 노력’은 다릅니다. 온전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약간의 쓴맛이 다크 초콜릿의 깊은 맛을 더 증폭시켜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쓴맛과 단맛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 인생의 어떤 요소를 어떻게 첨가하는 것이 좋을지 저의 글을 통해 쉽게 전달하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려주지 않아도 쓴맛과 단맛의 조합을 잘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긍정적인 사건이 있더라도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운명론자처럼 행복도 타고난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회의론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말이 맞아 보입니다. 과연 행복도 타고나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행복한 사람은 과연 타고나는 것인가에 대한 오해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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