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맛이 적다고 단 맛이 나지는 않는다
저는 학창 시절 공부를 마냥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자주 돌아오는 시험과 거기서 오는 경쟁이 저에게 스트레스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분노, 질투,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이 자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기에 다른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거나 게임과 같은 여가 활동을 즐길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도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 저에게 줄 행복이 더 클 것이라 막연하게 짐작하며 인내했습니다. 마치 겨울 뒤에 봄이 오듯 불행 뒤에 자연스럽게 행복이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서 추위는 사라졌지만 날씨가 따뜻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대학 진학 후 성적과 입시의 부담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딱히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긍정적인 감정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장밋빛 미래를 장담했던 수많은 어른들과 사회에 괜히 심술이 나기도 했습니다. 마치 속은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저와 비슷하게 지금의 불행이 끝나면 행복이 찾아온다는 생각에 부정적 감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단순히 불행이 줄어든다고 행복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행이 행복의 반대선상에 있다는 착각은 불행의 한자 뜻풀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자로 아닐 불(不), '다행 행(幸)을 쓰는 불행은 말 그래도 행복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감정은 단지 행복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고 슬픔, 분노, 질투 등의 고유한 감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서로 다른 동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행의 반대말은 ‘불행하지 않다’가 되고 행복의 반대말은 ‘행복하지 않다’로 생각해야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혼동을 피하기 위해 행복한 정서를 ‘긍정 정서(positive affect)’, 불행한 정서를 ‘부정정서(negative affect)’라고 분류를 합니다. 심리학의 여러 연구에서 긍정 정서와 부정정서의 연관성은 많지 않고 독립적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음식을 다양한 맛으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각 음식에는 중점적으로 느껴지는 맛들이 있습니다.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우리는 보통 쓴 맛을 기대하고 콜라를 마실 때는 단 맛을 기대합니다. 아메리카노의 쓴맛을 더 내기 위해서는 커피를 더 넣으면 됩니다. 반대로 줄이기 위해서는 커피를 덜 넣으면 됩니다. 콜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설탕의 양으로 단맛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커피를 적게 넣는다고 해서 아메리카노에서 갑자기 단맛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콜라에 아무리 설탕을 적게 넣는다고 해서 쓴맛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쓴 맛이 부정정서라면 단 맛은 긍정 정서입니다. 부정 정서가 줄어든다고 해서 무조건 긍정 정서가 증가하기를 바라는 일은 아메리카노에서 단 맛이 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런 오해가 또 다른 오해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의 저처럼 지금 겪고 있는 불행이 언젠가는 행복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카페에서 쿠폰에 도장 10개를 찍으면 음료를 받는 것처럼 불행을 쌓는다면 세상이 알아봐 주고 행복을 선사해 주리라 믿는 것입니다. 행복을 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료실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