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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Dr MCT Oct 07. 2024

행복이라는 함정

행복한 인생이 정답인가?

저에게 진료를 보는 환자분들 중 특히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왜 제 삶은 행복하지 않을 걸까요? 저는 행복할 일이 없어요”라고. 우울증이 생기면 뇌의 회로가 부정적인 일에 더 집중을 하도록 바뀌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그 상황에서는 당연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해 보이는 다른 사람의 인생과 비교하며 부정적 감정의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발달한 요즘 이 현상은 유독 더 심합니다. 이런 환자분들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의 인생을 실패한 삶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의 매 순간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여 행복을 인생의 절대적 가치로 두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최대 목적을 행복에 두는 사상은 기원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삶의 의미이며 목적이고 인간 존재의 온전한 목표이며 목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을 계승한 서양에서 이 개념은 시간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18세기의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사람이 하는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의 달성이다. 행복을 위해 기술을 발명하고, 학문을 육성하고, 법을 만들고, 사회를 형성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기간 정답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현대의 달라이 라마도 ‘종교를 믿든 아니든, 우리 삶의 목적은 행복이며 우리 삶은 행복을 향해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런 현인들의 말처럼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인생 대부분의 선택을 내립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행복을 지나치게 좇다 보면 행복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행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복이 우리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중요도를 헷갈리기도 합니다. 인간이 행복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우리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 몸이 살아남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몇천 년 전 태어났다면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해 맛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식이라도 먹어야 했을 것입니다. 맛이 아무리 없더라도 일단 생존을 해야 했으니까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음식은 결국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소금이 많은 음식이었고 그에 맞춰 우리는 짠맛, 단맛, 지방맛, 감칠맛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에서 맛이라는 요소는 영양소가 많은 음식이라는 목표를 잘 찾을 수 있는 중간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영양소 부족으로 인한 생존의 위협이 많이 줄어든 지금은 배보다 배꼽이 커져서 짠맛, 단맛, 지방맛, 감칠맛의 극한을 보여주는 맛집 사냥을 다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오마카세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음식이 존재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1인당 20만 원씩 하는 드라이 에이징 투쁠 거세 한우 코스를 먹는다고 해도 결국은 생존을 위한 단백질 덩이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맛만 쫓아가면 오히려 비만, 영양소의 불균형, 암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행복도 음식의 맛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삶과 생존이라는 거대한 목표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것이 행복입니다. 비교적 늦게 발전하기 시작한 심리학의 일부인 진화심리학에서 이에 대한 근거를 많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행복은 진화상의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5억 년 전부터 존재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척추동물 중 하나인 칠성장어라는 생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지만 척추동물이 어떻게 진화를 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칠성장어에는 생존을 위한 보상체계의 뇌가 있는데 이 영역이 현재 인간의 뇌에서 쾌락을 느끼게 하는 보상회로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행복이 생존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진화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 회로를 이용한 쾌와 불쾌의 감정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주는 ‘생존 신호등’입니다. 쾌를 느끼는 ‘초록불’이 많이 켜질수록 우리는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가설에 대해 반박합니다. 인간은 그런 하등한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지적인 생명체로 우리가 하는 행동에는 어떤 고고한 목표가 있다면서 말이지요. 부처의 가르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술품, 모차르트의 교향곡에는 단순 생존을 넘어서는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간접적으로 생존을 위한 행동에 포함됩니다. 돈, 대인관계, 여가만큼 직관적으로 우리 생존에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생존을 위한 수단의 일부입니다.




1980년에 쥐와 중독에 대한 중요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쥐가 레버를 누를 때 마약이 계속 투여되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20마리의 쥐 중 14마리가 호흡 경련이 일어나며 사망할 때까지 레버를 계속 눌러 마약을 투여받았습니다. 연구에서 보인 쥐들의 행동은 돈에 대한 집착으로 지나치게 야근을 많이 하다 건강을 잃는 사람, 여가 생활에만 빠져 지내다 밥을 굶는 사람, 도박만 하다가 전재산을 잃는 사람, 남들이 정해놓은 행복을 좇다 결국 심각한 우울증이 생기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마약에 빠진 쥐 마냥 삶의 부산물에 불과한 행복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정작 중요한 목표인 생존에 차질이 생기는 겁니다. 


실제로 진료실을 찾는 환자분들 중 행복을 꿈꾸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좌절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생존에 필요한 단순한 행위들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가장 기초가 되는 수면이나 식사, 청결 유지도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막연히 더 많은 돈, 명예, 성공을 위한 행동에만 집착합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시켜 기초적인 생명 활동만 다시 적절하게 재개할 수 있도록만 도와주더라도 행복해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물론 마트에서 시행하는 추가 증정 이벤트 같이 생존과 행복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순간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건강을 심각하게 잃거나, 전쟁과 같이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는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 행복하지 않다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생존해 있음으로써 삶의 의미 중 대부분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행복을 인생의 제 1목표로 두지 않아도 됩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실패한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나친 행복 예찬을 줄이고 행복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든 당신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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