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를 행복하게 하는 것
저의 삶을 가장 즐겁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음식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맛있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 일은 특히 외국에서 더 즐겁습니다. 몇 년 전 저는 혼자 이탈리아 여행을 갔습니다. 저는 여행할 때 미리 식당을 찾아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현지에서 알아보거나 구글 맵의 평점을 믿는 편이라 그때도 준비 없이 출발했습니다. 피렌체에 도착해서 어디서 저녁을 먹을지 구글 맵을 보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때마침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슐랭 1 스타의 맛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평점도 나쁘지 않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라구 파스타와 크림 리조또를 먹었는데 너무 큰 기대를 해서일까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좋은 평점과 미슐랭 스타를 받은 집이었음에도 제 입맛에는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음식에 대한 만족도의 차이는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맛집을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맛있어서 유행하는 음식을 나는 싫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비싸고 귀하다는 3대 진미 캐비어, 트러플, 푸아그라를 맛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에 따라 유전적으로 타고난 미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유전자 변이 정도에 따라서 쓴맛을 느끼는 정도가 85%나 차이 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 사람에 따라 설탕은 200%, 소금은 135%나 차이 나게 느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로 보았을 때 식당의 평점이 안 좋게 달렸을 때 요리사분들도 너무 상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같은 음식을 2배나 짜게 느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맛있다’라는 것은 한 가지로 정의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맛있음만큼이나 천차만별인 것이 행복입니다. 저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역일 수 있습니다. 김종국 씨와 같은 사람은 운동을 하면서 ‘아우 맛있다’하면서 즐기지만 또 다른 사람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행위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경험이나 감정이 다릅니다. 그래서 그 누구의 행복도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현대까지 행복을 한 가지로 정의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정의를 내려야만 행복한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쉽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덕에 따른 활동’이라고 말했으며, 덕을 실천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이루는 핵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석가모니는 ‘행복으로 가는 길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는 데 있다’고 했으며, 쾌락주의의 창시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은 몸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을 피하는 데 있다’ 고도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행복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당신이 말하는 것, 그리고 당신이 하는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온다’고 하고 달라이 라마는 ‘행복은 이미 우리에게 있다.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각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봤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 ‘행복의 철학’의 저자 철학가 루트비히 마르쿠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의 행복은 수많은 원천이 있고 그 원천에 따라 아주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행복은…’이라고 하는 독단적으로 한정 짓는 정의는 모두 행복이 단 하나의 방법으로 생긴다는 오류에 근거한다. (중략) 결국 지금까지 행복의 정의는 언제나 생각이 좁은 단견의 산물이거나 거대한 고백의 산물이었다.’
위대한 현인들의 행복에 대한 정의도 결국 한 사람의 경험에서 나오는 고백에 불과할 뿐입니다(물론 그 고백 안에는 상당한 통찰이 있겠지만요). 루트비히의 말처럼 행복은 철저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정의만으로 통일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행복을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행복과 헷갈리는 감정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기쁨, 만족감, 사랑, 평온함, 희망, 자부심, 감사, 유쾌함, 경외감 등 많은 감정들은 행복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합니다 이런 감정들과 행복은 무 자르듯이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뇌의 활성화를 보는 검사인 PET 검사와 fMRI 검사를 분석한 결과 감정들은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으며 감정들이 겹치거나 중첩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행복의 정의에 대한 저만의 작은 고백을 하고자 합니다. 처칠이 ‘계획은 중요하지 않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은 필수적이다’과 같이 말했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밑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져야 그것을 목표 삼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다 해도 말입니다. 다만 저는 대단한 철학가나 사상가나 연구자는 아니기 때문에 그 근거의 대부분을 과학적 연구의 힘을 빌려 세워나가고자 합니다. 다행히 1990년대부터 대두된 긍정심리학을 필두로 행복에 관한 연구가 상당히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행복의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