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는 어떻게 행복을 찾았나
정신과 진료를 보면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방문합니다. 첫 번째 부류는 우리가 정신병리라고 부르는 우울, 불안과 같은 증상들이 심해서 아픈 것을 치료 받고자 하는 분들입니다. 다른 진료과에 비유하자면 자동차 사고로 나서 다리 골절로 정형외과에 내원한 것과 같은 환자분들입니다. 곧바로 뛰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사람들 정도로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우울감, 불안감, 강박증, 환청, 불면 등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두번째 부류의 환자들은 특정한 정신과적 질환을 진단하기는 힘들지만 지금 심리 상태의 불만족을 해결하고자 찾아오는 분들입니다. 앞선 부류의 환자들이 다리를 다친 사람들이었다면, 이 부류의 환자들은 다리가 괜찮아서 잘 걷고 있지만 단순히 걷는 것을 넘어서 잘 뛰고, 운동을 하고, 퍼포먼스를 향상 시키고자 하는 분들입니다. 이 부류의 사람들 자주 ‘선생님,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하고 묻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의학은 20세기까지 ‘어떻게 하면 질병에서 빨리 완치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감염, 염증, 암, 상해 등에서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발생한 질환이나 상처에 대해서 치료하는 것에도 점차 한계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어떻게 하면 암이 덜 발생하고, 위궤양이 안생기고, 관절염이 덜 생기고, 디스크가 안생기도록 예방하는 방법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였습니다. 우리는 단지 안 아픈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꿨습니다. 더 강한 체력을 얻고, 운동을 더 잘 하고, 노화를 최대한 느리게 진행하도록 하는 법 등을 연구하였고 덕분에 현대인들은 신체적으로 더 건강하고 활동적인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정신의학과도 비슷한 역사를 밟아왔습니다. 19세기부터 신경증, 히스테리, 정신증, 멜랑꼴리아 등의 정신병리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이 연구되었습니다. 이는 주로 아픈 ‘정신 질환자’의 정신 병리를 이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51년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항조현병약제의 발견을 시작으로 1960년대부터는 벤조디아제핀, 1980년대부터는 프로작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정신과약들이 개발되며 뇌의 생리적 이상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졌습니다. 덕분에 많은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조현병, 양극성 정동 장애,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 장애 등을 앓고 있던 환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원하는 삶은 단순히 ‘덜 아픈’ 삶이 아니었습니다.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다친 사람이 다리가 나으면 뛰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은 법입니다. 현대 사회의 대다수의 사람들도 단지 덜 슬프고, 덜 불안한 삶을 뛰어넘어 더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즉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입니다.
제 병원을 찾는 분들도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저에게 행복의 비결을 물어볼때면 ‘나는 행복한가?’를 스스로 반문해보기도 합니다. 저도 분명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를 비교적 잘 넘겨왔고 지금은 여러가지 경험과 공부를 하면서 더 행복한 삶에 근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험들과 지식을 같이 공유하고자 이 책을 쓰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무척 평범하지만 행복한 아이였습니다. 그저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칭찬을 많이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입학 후 친 첫 시험에서 우연히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고 이후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그 때부터는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의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도 뭔가 성적을 유지하고 앞으로 더 잘해야할 것만 같은 압박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주변에서의 압박이 요즘의 학생들이 겪는 정도의 압박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스스로를 ‘공부를 잘해야 좋은 학생, 좋은 아들’이라는 틀에 집어넣었을 뿐입니다. 거기에다 우리나라 특유의 학벌주의의 영향까지 받아서 향후 6년 동안 입시 경쟁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분명 행복에서 거리가 멀어져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대학에 입학하면 행복해질거야’라며 세뇌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니 주변에서도 그런 생각에 굳이 딴지를 걸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운이 좋게 저는 목표하던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합격 발표의 순간 굉장한 기쁨을 느꼈다기보단 큰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의대를 진학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주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마음과 재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이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 제가 그리던 행복이 도처에 널려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활도 제가 고등학교 시절 상상하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끝일거라 생각했던 공부는 더 많이 해야 했고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졌습니다. 다방면으로 똑똑하고 재능있는 선후배들과 동기들이 넘쳐났고 그 틈에서 오히려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저는 다시 한번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직 대학생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거야. 전문의가 되고 나면 그 때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 할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졸업 후 저는 정신과를 전공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마 ‘행복한 삶’이란 뭘까에 대한 궁금증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전공의 4년과 전임의 1년 과정을 더 공부한 이후에야 저는 20살때 고대한 순간에 도달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6년의 기다림 끝에 행복을 꿈꿨지만 실패했으니 12년 정도의 고생 끝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내심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제가 바라던 황금향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행복한 순간 없이 불행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족과의 시간, 친구들과의 시간, 취미 활동, 여행 등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지금의 삶이 행복한가요?’라고 물었다면 아마 ‘행복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 같은 시간들이 길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행복은 ‘참고 견딘 후에 누군가 나에게 주는 보상’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6년, 인턴 및 레지던트 5년, 전임의 1년. 총 18년간 스스로를 두고 임상 시험을 두번에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제 가설은 ‘참고 견뎌서 원하던 목표만 달성하면 그 끝에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였습니다. 실험 결과 그 가설은 틀렸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표본이 나 하나 밖에 없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비슷한 선후배 및 동기들도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의 가설을 버리고 새로운 가설을 찾기 위해 나섰습니다.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이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에 공부하고 또 직접 체험해봤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타고난 일부의 재능과 운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저의 위치에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매우 평범한 생각과 고민을 하고 불행과 행복을 남들과 비슷하게 경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에 대해 공부하며 저를 비롯한 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오해를 바로잡음으로써 행복한 삶에 더 가까워 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 또한 그랬기 때문입니다. ‘하버드는 학생들에게 행복을 가르친다’의 저자 하버드의 심리학 교수 탈 벤 샤히르는 이것을 ‘행복 혁명’이라고 합니다. 행복 혁명은 과학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처럼 일부 사람들에서부터 시작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이 행복에 대한 인식이 일어날 때 개인과 사회 모두에서 행복 혁명이 시작될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이 마냥 쉽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가까이 있는 듯하면서도 멀리 있는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려운 여정의 첫 걸음은 행복이란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정의를 내리면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