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을 발견하는 방법
저는 호기심이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시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성격의 장점은 많은 것들에 대한 얕은 지식과 노하우가 쌓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한 가지 일이 푹 빠지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저는 마땅히 오래 동안 지속한 취미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취미에 도전한다는 일이 저에게 행복감을 주었지만 그 취미 자체가 주는 행복에 대해서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처음 칠 때는 피아노를 배운다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지만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주는 행복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빠르게 실력이 늘어나는 초심자의 단계만 벗어나면 그만두는 취미가 많았습니다. 주위에서 보면 참 취미가 많아 보이고 뭐든지 즐기면서 사는 사람처럼 보였을 순 있겠지만 실상은 어떤 일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지 명확하지 않아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아 진료실을 찾아온 환자들은 그때의 저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제가 진심으로 빠져들 수 있는 취미를 찾지 못하고 이것저것 맛만 보았듯이 그들도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게 어떤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아마 길가에서 아무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가족, 휴식, 돈과 같이 추상적인 대답을 할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구와 무엇을 할 때인지, 어떤 일을 하면서 휴식을 할 때인지, 정확히 어떤 종류를 물건을 살 때인지와 같이 구체적으로 행복을 주는 일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잘 모른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잘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때로 어떤 큰일이 생기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가까운 지인이 사망하거나, 갑자기 큰 병이 생기거나, 이사를 가거나 하는 변화가 생기면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나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루의 끝이나 일주일에 끝에 내가 뭘 했는지 꾸준히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저장 용량이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 뇌는 일상적이지 않은 특이한 것 위주로 기억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딸과 놀이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하루만 지나도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길 가다가 오만 원권을 주운건 며칠 후에도 기억이 납니다. 직장에서 별 탈 없이 끝난 회의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상사에게 크게 혼난 일은 며칠 후에도 명확히 기억납니다. 그러나 강력한 자극들조차도 몇 개월이 지나면 정확한 사건은 기억나지 않고 어렴풋한 감정만 남게 됩니다. ‘뭔가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그랬더라?’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큰 행복은 잘 기억하지만 일상에 소소한 행복을 준 사건들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시험에 합격한 순간은 잘 기억하지만 오래 고민하던 수학 문제 하나를 풀었을 때의 희열은 빨리 잊어버립니다. 대부분의 일들은 하루만 지나도 희미한 감정으로 남을 뿐 구체적인 인과관계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랜만에 뒤를 돌아보면 일기를 열심히 쓰지 않은 이상 어떤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정확히 기억하기 힘듭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재료를 준비하지 않은 채로 요리를 시작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의 주 재료가 되는 일들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우리 일상은 보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생존과 안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활동으로 현대에는 ‘돈을 버는 것’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생산 활동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과 자신의 주위 환경을 관리하는 활동으로 유지 활동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위에 두 시간을 소모하고 남은 시간에 주로 하는 여가 활동이 있습니다. 생산과 유지에 우리는 보통 각각 하루의 4분의 1 정도씩을 사용합니다. 물론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생산 활동이 하루의 절반 이상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남는 시간인 여가 시간도 사람마다 달라지는데 보통은 하루의 5분의 1 정도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생산, 유지, 여가 활동 곳곳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생산 활동에서는 긍정 정서, 즉 기쁨과 같은 감정적인 행복보다는 만족감, 뿌듯함, 몰입과 같은 인지적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유지 활동은 어떤 활동인지에 따라 느끼는 행복의 종류와 정도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청소를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과 같은 활동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않지만 밥을 먹는 것에서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여가 활동도 내가 어떤 활동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가장 행복의 정도가 차이가 납니다. 다만 행복감과 중독감을 구분하지 못해서 별달리 긍정적인 정서를 주거나, 인지적인 행복을 주는 활동이 아닌데도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가 중에서 독서나 운동과 같은 능동적인 여가는 행복감을 주는 편이지만 TV 시청이나 유튜브 시청과 같은 수동적 여가는 별다른 행복감을 주지 않습니다. 지금 자신의 핸드폰을 켜서 하루 평균 사용 시간을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행복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많음에도 하루에도 몇 시간씩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여가 활동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따라 느끼는 행복은 천차만별이며 어떤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정확하게 모를 때도 많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도 결국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엉터리가 아니냐?’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연구를 할 때 연구자들은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생태순간평가(ecological momentary assessment)를 이용합니다. 이 방법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감정, 행동, 환경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방법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짧은 설문이나 질문을 여러 번 받아, 그 순간의 기분이나 행동을 기록하게 되며,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특정 상황이나 시간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는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기억에 의존한 전통적인 설문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여, 사람들의 실제 생활 속 경험을 연구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결국 우리도 스스로가 행복한 요소를 찾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즉각적인 피드백을 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환자들에게도 늘 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수능을 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대학생 무렵에는 어떻게 공부를 잘했느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엄청 똑똑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궁금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억력도 추리력도 문해력도 매우 평범한 수준입니다. 다만 한 가지 비결이 있다면 오답에 대해서는 늘 피드백을 많이 했습니다. 스스로의 오답노트를 만들어서 다음에는 비슷한 문제를 절대 틀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비결 중 하나를 물어본다면 비슷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일들에 대한 피드백을 해야 하고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일기처럼 규칙적으로 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주 뒤돌아보면 어떤 일이 행복한 감정이나 만족감을 이끌어 냈는지 자주 뒤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무엇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지 잘 몰라서 많은 시도를 했고 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이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를 질문했기 때문에 지금은 저만의 오답 노트가 조금 쌓였습니다. 술을 마시면서 너무 왁자지껄하게 노는 것, 시끄러운 클럽에 가는 것,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 등은 저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점과 가족 및 가까운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좋아하는 게임에 빠지는 것,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 책을 읽는 것 등이 행복감을 준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알고 있나요? 만약 없다면 앞으로 자신만의 오답노트를 만드는 것이 행복한 삶을 조립해 나가는데 유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