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밑에서 행복을 기다리는 당신을 위한 글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차를 몰고 나섰는데 유난히 신호등이 많이 막히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오늘 운이 안 좋은 것 같다며 괜스레 기분이 안 좋아집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그런 불운이 반복되면 그다음 일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날은 불행한 날로 기억되곤 합니다. 반대로 어떤 날은 마치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이 신호등이 알아서 척척 초록불로 바뀌어서 휘파람을 불며 출근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괜히 운이 좋은 것 같아 로또라도 사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우연이 행복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행복의 영단어 happy의 어원은 ‘행운’ 또는 ‘기회’를 뜻하는 아이슬란드어 ‘happ’로 hapzard(우연), happenstance(우연한 일)과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출퇴근길 신호등에 영향을 받는 저처럼 하루의 기분이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날도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감정을 아무리 잘 조절한다고 하더라도 부처, 예수와 같은 성인이 아닌 이상 우연에 의해 기분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우연한 일이 반복적으로 생기는 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연만으로 행복을 설명하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우연에 대한 해석을 할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우연이 우리 코 앞을 스쳐 지나가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우연을 과대평가해서 스스로의 행복을 제한시킬 때도 있습니다. 얼마만큼의 우연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우연이 정말 우연으로 일어난 일인지 우리 뇌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 뇌는 우연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않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어떤 사건을 판단하지 않고 대충 계산을 해서 생존을 위한 빠른 판단을 하는 능력을 전문 용어로는 휴리스틱이라고 합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휴리스틱이 발달했으나 이로 인해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휴리스틱이 우연을 잘못 판단하는 경우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도박에 대한 착각입니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오늘은 운이 좋다"거나 "이번엔 반드시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슬롯머신에서 연속으로 잃고 나면 "이제는 이길 차례"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이전에 승리한 경험이 있는 기계에서 계속 게임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대표성 휴리스틱에 의한 것으로, 실제로는 과거의 결과가 현재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특정 패턴이나 '운'이 존재한다고 믿게 됩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돈을 잃거나, 행운을 잘못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요리를 할 때 재료들이 어떤 맛을 내는지 알아야 내가 생각했던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요리 초보들이 가장 많이 실수를 하는 부분은 자신이 넣는 조미료가 어떤 맛을 내고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모르고 요리에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맛을 내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재료를 넣고 원하는 맛있는 요리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우연을 토대로 행복한 삶을 바라는 것은 아무 재료를 마구잡이로 넣고 음식이 맛있어지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뇌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우연히 일어나는지에 대해 잘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빈약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우연은 행복에 주는 영향이 미미합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이자 심리학자인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그는 행복을 '경험적 행복(evaluative well-being)'과 '일상적 행복(experiential well-being)'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경험적 행복은 삶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 보통 사람들은 좋은 직장, 안정된 소득, 건강한 가족 등 장기적인 요소들에 기반하여 행복을 평가합니다. 반면 일상적 행복은 특정 순간에서 느끼는 감정으로, 날씨나 교통 상황, 하루 동안의 사건들이 이 부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일상적 행복은 주로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반면, 경험적 행복은 우리가 장기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요소들에 의해 좌우됩니다. 이 연구에서 우연이 일상적인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크긴 하지만, 그것이 전체적인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라고 합니다. 즉 우연이 잠깐의 긍정적 감정을 느끼게 할 수는 있지만 전반적인 행복을 채워나갈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우연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즐거운 감정을 무시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 스스로 행운을 판별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미 발생한 우연을 행운으로 여기고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말입니다. 또 행운으로만 우리 행복을 다 채울 수는 없기 때문에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행복을 찾아 나선다는 말은 우리가 특정 행동을 하거나 목표를 세우는 방식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도 가능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불운으로 생각할지, 행운으로 생각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법륜 스님의 책 ‘지금 이대로 좋다’에서 스님이 행복에 관해 얘기한 구절이 있습니다.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소원이 뭐니?
공부 잘하는 거예요.
공부 잘해서 뭐 하려고?
좋은 대학 가려고요.
이렇게 계속 물어가면 좋은 대학 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하겠지요.
(중략)
좋은 집 사고 결혼도 하면 행복하게 살겠죠.
결국 우리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행복해지는 데는 이렇게 긴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만족하면 바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
법륜 스님의 말처럼 행복을 위해서는 수많은 행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행운을 쫓아다니며 촉박한 인생을 살지 행운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았다고 만족하면서 살지에 대한 선택은 나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