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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mom Oct 25. 2022

우선순위는 계속 바뀐다

통시적 관점에서 '일-가정 양립' 이해하기

만화경 경력 이론(Mainiero & Sullivan, 2006)
전통적인 경력 이론들이 조직 안에서 승진하는 과정을 주로 설명해오던 것과 달리, 만화경 경력 모형(kaleidoscope career model)은 경력이 '가족'이라는 변수의 영향을 받으며 역동성을 보이는 과정을 설명한다. 여기서의 역동성은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의 역할 병행의 분주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삶의 과정에서의 변화무쌍함을 의미한다. 만화경 경력 이론은 공시적 차원에서의 경력 형태가 아닌 통시적 차원에서의 경력개발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만화경을 들여다 본적이 있는가? 작은 구멍으로 긴 원통 안을 들여다보면 통을 돌릴 때마다 유리조각들이 재배열되면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 참 아름답다. 만화경 경력 모형에 따르면, 만화경을 돌려 유리조각들의 패턴을 바꾸듯, 개인은 각 경력과 생애의 단계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재배열하면서 경력을 형성해간다. 만화경 안에 숨어있는 3면의 거울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그림이 만들어지듯, 개인은 세 가지의 경력요구(A,B,C)를 중심으로 경력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경력을 만들어간다(Sullivan & Baruch, 2009).

여기서 개인의 경력 양상을 변화시키는 세 가지 요소는 진정성, 균형, 도전이다. 우선 진정성(A, authenticity)은 개인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추구 하고자 하는 요구이다. 두 번째로 균형(B, balance)은 자신의 삶에서 일과 일 외의 영역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자 하는 요구이다. 마지막으로 도전(C, challenge)은 경력개발과 같이 일에서 도전적인 과제를 통해 성장, 발전하고자 하는 요구이다. 


통시적 관점에서의 일-가족 양립


진정성, 균형, 그리고 도전

이 세 가지 경력요구는 항상 존재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매번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그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일하는 엄마가 어떻게 항상 정시 퇴근, 유연근무, 단축근무를 하면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가족을 위해 잠시 경력의 정체기가 올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성장해야 할 시기가 있는가 하면, 일하는 마음과 태도를 정비하고 '진정성'을 다지는 시기도 필요하다. 삶에서 여러 역할들 간의 '균형'이 중요해지는 시기가 있지만 다시 진정성과 도전을 회복할 수 있는 때가 찾아온다. 

가족의 협조와 자녀의 성장에 따라서, 혹은 직장 업무의 중요도와 긴급도에 따라서 일과 가족에서의 '역할'에 대한 요구는 끊임 없이 바뀐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 가치들은 서로 경쟁하며 우선순위 다툼을 한다. 필연적으로 '역할갈등'의 양상과 정도도 지속적으로 달라진다. 

그러니 일-가족 양립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아기에 여러 역할 간의 균형을 맞추는 개념이 아니다. 장기적인 경력의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적절히 조율하여, 종국에는 일과 가족의 양쪽 영역 모두 무너지지 않고 건강히 세워나간다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경력 밀어주기를 위한 협동 작전: 번갈아 달리기


그동안 여성은 출산 후 일에 복귀하면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유지된 것만으로도 안도해야 했다.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워킹맘은 균형잡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보다 적극적인 경력개발을 위한 '도전적 태도'는 '균형'이라는 가치와 충돌한다. 하지만 계속 '균형' 때문에 계속 지속적으로 '도전'이 발목 잡힐 수는 없다. 

그럼 이 상황은 어떻게 해결이 가능할까? 이때 부부의 협력이 빛을 발한다. 일과 가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 롱런하려면 '번갈아 달리기' 전략이 필요하다. 남편, 아내가 서로 일중심성과 가정중심성이 겹치지 않도록 우선순위를 적극적으로 조율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아내가 새로운 보직을 맡거나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남편은 칼퇴근을 불사하고 ‘family man’ 모드로 바뀌어 주어야 한다. 반대로 남편이 일에 몰입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오면 아내가 일과 육아 병행을 위해 최대한 업무를 조정해볼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자녀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노동에 대한 분담을 조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건강, 가족 안에서의 정서적 관계까지 돌보는 전반적인 경영과 운영(managing)을 주도함을 의미한다. 배우자 둘 중 한 명이 일에 파묻혀 몰입해야 하는 시기에는 '워커홀릭'모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나머지 한 사람이 가족 경영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지금 당장 삶의 중심성이 일에, 혹은 가정에 쏠려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게중심은 끊임 없이 이동하는 유동성을 갖는다. 남편과 아내는 중심 잡기 게임에 함께 등판한 플레이어들이다. 아내가 일에 몰입해야 할 때 남편이 가정을 챙기고, 남편이 일에 집중해야 할 때는 아내가 가정을 돌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 

그럴 마음이 있다고 해서 우선순위의 조율이 항상 뜻대로 순조롭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의 개인적인 필요 보다도 조직, 고객, 시장 환경의 요구에 따라서 내 의도와 상관없이 일에 몰입해야 하는 정도가 달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자의 경력 과제에 최대한 관심을 갖고 그에 맞춰 서로의 경력과 가족의 필요를 보조하려는 마인드셋을 장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중심적인 세상에서 외부의 요구와 개인의 욕심에 따라 더 높이, 더 빨리 나아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특히 가장의 무게를 느낀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부모가 된 이상 일과 가족은 같이 가는 것이다. 일에 대한 진정성과 일-가족 균형, 도전과 자기개발을 한꺼번에 동시에 얻으려다가는 오히려 모두 잃을 수도 있다. 우선순위를 계속 조율하며 일해도 괜찮다. 그게 오히려 '지속가능한 일하기'를 위한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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