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관계 정립
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긴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행자'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긴 시간 장거리 여행을 만족스럽게 잘 마치려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성을 정립해야 할까? '각자'의 일을 지속하면서 '함께'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생애의 미션에 성공하기 위해 어떤 파트너십이 필요할까?
부부는 각자 개인적인 경력 경로와 가정의 공동 경로가 함께 존재함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부모가 되면 그에 대한 역할이 추가되는 만큼, 부부가 이와 같이 이중 경로를 공유하는 관계임이 더 분명해진다. 출산이나 육아를 경험한 이후로도 남편과 아내 둘 다 지속적으로 일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한다. 서로의 경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조력해야 하며, 그에 맞춰 가족 안에서 부모로서의 역할을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일에서, 그리고 부모로서 정체성과 역할을 세워가는 과정은 반드시 '함께' 관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일과 가족의 두 트랙이 상존하는 이상, 아내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일-가정 양립은 중요한 인생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앞 절에서도 다뤘지만, 아내는 출산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경력의 전환기를 경험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일-가정 양립이 여성들만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아내에게 자녀 양육을 위임하고 모르는 척 본업에만 충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부모 역할도 아내와 함께 하는 또 다른 본업이라는 주인의식, 프로의식을 장착하길 바란다. 양가 어른, 도우미의 도움을 구하기에 앞서서 부모로서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인 당사자들에게 돌봄의 우선적인 책임이 있고 그럴만한 권리가 있다. 걸림돌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때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감정과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과 가족의 두 영역에 부부가 각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지 공유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생애 목표를 아주 구체화해서 세울 필요는 없다. 환경이 워낙 급변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시시때때로 튀어 오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작업은 무용할지도 모르겠다. (집값부터 내 몸의 건강까지 무엇하나 예상 가능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일과 가족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들, 추구하는 방식이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확인하는 것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일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해보자.
기왕이면 부부간의 방향성이 일치한다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부부가 일과 가족의 두 영역에서 서로의 목표를 존중하고, 어떤 협력 관계를 구축할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안전한 출발이다. 그럼 그 과정에서 일과 가족을 적절히 위치시켜 볼 수 있다.
인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원래 의도했던 삶의 방향은 끊임없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인생 여정에서 일과 가족의 위치도 재배열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에 지속적으로 그 방향성을 정렬시켜 나가는 작업을 통해, 함께 멋진 가족을 꾸리면서 각자의 일을 지지하는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라는 주례사는 시대착오적이다. 이제는 이타주의보다 합리적 이기주의에 더 열광하는 시대가 아닌가? 나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는 메시지가 가득한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상대방을 나보다 더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낭만적인 관계에만 머물러 서로에게 감정적인 교류만 기대하고 다짐하는 것으로는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담보할 수 없다. 마음과 열정만 가득하다고 여행을 잘할 수 있겠는가?
결혼 생활은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과정이다. 끝까지 함께 그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정보도 필요하고 체력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갈등이 생길 때 지침이 되어줄 가치와 신념,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소통의 기술도 필요하다. 부부는 이 자원들을 적절히 전략적으로 운영하면서 협력적인 팀워크를 발휘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시작하는 부부는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래서 각자의 물질적,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부족함을 인정하고 보완해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하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약속보다는 더 멋진 사람이 되어가도록 겸손히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현실적인 다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