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시작 D-2
인턴 시작 전, 졸립고 지루한 이론 교육을 받았다.
교육 막바지에 제비뽑기로 일년 스케쥴을 정했고, 3월 당직표가 나왔다.
제비뽑기 할 때는 어찌나 떨리던지.
주 88시간 근무
36시간 연속 근무 금지
일년 중 절반은 본원 근무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는 최소 한 번 필수
앞으로 1년간 인턴 근무의 원칙이었다.
전공의법이 시행될 예정이라 그나마 근무 조건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속 36시간 근무라니 ! 주 88시간 일한다니 !
밖은 주 52시간 근무제 이야기가 나오는 세상에, 이게 과연 맞는 일인가? 싶다가도 100일 동안 연속 당직을 섰던 라떼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 ?
스케쥴을 확인하면서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3월 당직표가 공지 되자마자 내 이름을 찾기 위해 재빨리 훑어보았다.
어머나, 한 달에 한 번, 무려 토,일 연속해서 쉬는 날이 있었다.
올레 !
금요일 밤 당직을 서고 토요일 아침에 퇴근해서 일요일에 쉬고, 다시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는 스케쥴이다.
내가 너무 최악을 생각하고 왔는지, 한 번이라도 연오프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회사 다닐 때는 특별한 일 없으면 당연했던 주 5일 근무였는데, 그게 이렇게 간절한 일이 될 줄이야 ...
그 때만해도 토,일 이틀은 집에서 쉬고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막상 가보니 출근시간이 새벽 6시부터라 전날 밤 미리 숙소에 다시 와야했지만 말이다.
의료인의 휴식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일인데,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노동 환경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인턴 시작 전 마지막 휴일.
다음날 짐 싸들고 인턴 숙소로 들어가고, 이전 인턴들에게 인계를 받을 예정이었다.
출근하면 당장 실전에서 해봐야 할 술기 목록들을 체크하고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복부천자, 동맥혈 채혈, 혈액배양 채혈
심전도 촬영, 비위관 삽관
각종 동의서 받기 ...
첫 턴은 내가 두려워 하는 바늘 술기가 많은 내과였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마지막 자유인의 하루인만큼, 오늘은 병원 생각 하지 말고 쉬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맘대로 되질 않았다. 카페에 소설 책을 들고 나왔지만 한 장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대신 다음날 처음으로 해봐야하는 술기들이 머리에서 뱅뱅 돌았다. 온 몸에 긴장감이 채워져 있었다.
인턴 생활, 작은 목표를 세워보았다.
- 최대한 모든 술기 다 해보고 피하지 말고, 숙달 될 수 있게 하기
- 내가 하는 술기와 동의서 받는 모든 시술에 대해 잘 공부해두기
- 환자, 간호사, 동료나 선배 의사들에게 예의 바르게 일하기
워낙 학생때부터 손이 굼떠서 걱정이 크지만 많이 해보면 언젠가는 늘겠지.
일 년 동안 사고 치지도 않고, 사고 당하지도 않기를.
무엇보다, 무사히 끝마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