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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Mar 03. 2022

첫 경험들

인턴 의사가 병원에서 하는 일

의사가 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정말 다양하다.

과에 따라서도 다르고,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교수 같은 신분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이다.


그중에 인턴이 하는 일은 파견 과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처방을 내리거나 수술을 하는 그런 고급진 의사의 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인턴을 시킨다!


인턴 생활과 관련된 유명한 격언이다.

그 정도로 인턴은 병원에서 필요한 온갖 잡일과 다양한 일들을 해내야 하고, 그것이 인턴의 업무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인턴 업무 평가 성적은 향후 레지던트 선발에도 반영이 되기에 인턴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스스로 하든, 부탁해서 하든, 무엇을 동원해서든지 결국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첫 턴, 내과 인턴인 나는 매일 새벽 5시 출근을 했다.

아직 잠들어 있는 병동을 조용히 돌면서 회진 전까지 마쳐야 하는 업무들을 처리한다. 이후에는 쏟아지는 콜들을 받으며 내과 병동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일을 하다 오후 5시 혹은 저녁 9시경 퇴근을 한다.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며 새벽에도 오는 콜들을 처리한다.


병원마다 업무 범위에 차이는 있지만 우리 병원 내과 인턴의 업무는 아래와 같았다.


동맥혈 채혈
정맥 채혈 중 세균 배양을 위한 채혈
심전도 촬영 (ECG)
콧줄(L tube) 넣기
소변줄(foley) 끼우기 (남자 환자에게만)
관장(Enema)
시술 부위 면도(shaving)
복수를 바늘과 관을 넣어 제거하는 복수 천자(paracentesis)
CT 촬영이나 위/대장내시경 등 검사 동의서 받기
환자가 수혈받거나 검사할 때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지 옆에서 관찰하는 '킵(keep)'
주말/휴일에 전담 간호사가 없을 때는 상처부위 드레싱


이 업무들을 모두 학생 때 실제로 사람에게 해본 적이 있느냐? 놀랍지만 아니다. 대부분의 실습은 마네킹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마저도 의대 실습과정에 없는 복수 천자와 같은 술기는 동영상과 책으로 공부했고 인턴 전 날 인계를 통해 실제로 딱 한 번 보았을 뿐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던 사람들이 오늘부터 당장 사람에게 바늘을 찔러야 한다니, 혹시라도 무언가 잘 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컸다.





근무 첫날부터 B형 간염 환자의 복수 천자를 혼자 하게 되었다. 전 날 인계받을 때 복수 천자를 볼 기회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실제로 사람에게 하는 것을 본 적도 없이 모형에만 해본 후 환자 배에 바늘을 꽂게 될 뻔했다. 다른 인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사람에게 복수 천자를 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내가 복수 천자를 하러 간다니 따라와서 같이 봐주었다.

B형 간염은 체액을 통해 옮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는데, 검체를 받으면서 복수를 바닥에 줄줄줄 흘리는 바람에 내 등에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옆에서 동기들이 테이프도 뜯어주고 도와주어서 겨우겨우 관을 환자 배에 무사히 고정시키고 나올 수 있었다.


이후 첫 동맥혈 채혈은 결핵 감염 환자였다. 이때쯤 나의 내공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아챘어야 한다. (의료계에서 쓰는 '내공이 좋지 않다'는 표현은 어렵고 힘든 환자들을 많이 만나는 것을 말한다.)


오리 마스크를 쓰고 격리 방에 들어가서 환자의 동맥을 찾으려니 내가 다 숨이 막히고 긴장이 되었다. 동맥혈 채혈은 학생 때 응급실에서 몇 번 선생님의 감독하에 사람들에게 직접 해본 적이 있었지만, 동맥이 워낙 통통하고 탄성이 좋아 잘 도망가기도 하고, 꽤나 아프기도 해서 환자가 조금만 움직여도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첫 채혈은 한 번에 성공!!!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후에는 참 많은 채혈들을 실패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쏟아지는 컴플레인과 환자에 대한 미안함, 자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떨리는 하루가 끝나고 첫날 첫 당직. 모두가 퇴근한 저녁부터 자정까지 7시간 넘게 쉬지 않고 돌아다녀도 일이 끝나지를 않았다. 밥 먹기는커녕 물도 한 잔 마실 시간이 없었다. 아직 일 하나하나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아직 병원 돌아가는 시스템을 잘 모르는 탓이리라.


당직 때 정말 미친 듯이 콜을 처리하고 나니 벌써부터 다음 당직이 두려워졌다. 인생이 다 그렇겠지만, 인턴 생활이 어떤지 잘 모르니까 그나마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들 금방 적응하고 요령이 생긴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남은 일 년이 막막해지면서, 이 일은 정말 일 년만 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50시간 30분


그렇게 첫 3일 동안 50시간 30분 근무를 했다. 그동안 잠은 10시간 남짓 잤나... 면부족과 피로,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3일이었다. 온 병원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다리도 너무 아프고 입 안에는 궤양이 세 개 정도 생겼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힘들지만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생각하면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빠에게 안부 전화가 왔다. 평소 아빠랑 그다지 다정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아빠의 "잘 있어?"란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올라와 깜짝 놀랐다. 24시간 긴장감 속에서 기계처럼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그저 먹거나 자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억눌려있던 감정이 불쑥 튀어나온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감정에 빠져 있을 겨를도 없이, 눈물을 닦고 어서 잠을 청하며 첫 주말을 준비 했다. 주말 당직 날은 근무 인원은 줄어들고, 병원에 도와줄 동기들도 적어져 또 긴장이 제법 되었다. 무사히 이번 주말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하며 그렇게 집에 갈 날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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