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화장품을 선물 받았다.
엄마와 딸의 사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 엄마가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낸다. 엄마는 얼마 전부터 우리 아이를 봐주시기 시작해 퇴근 후 요즘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고 있다.
"이거 너 써"
"이게 뭐야?"
"화장품이야. 선물로 두 개 받았는데 하나는 너 쓰라고. 퇴근하고 오면 너 얼굴에 주름도 자글자글하고 보기 안쓰러워."
으잉? 정말?
다시 거울을 한 번 본다.
"에이 내 얼굴이 그 정도야? 아니야 엄마~~"
부정했지만 거울 속 내 모습에서 화장기 없이 칙칙한 낯빛을 숨길 수 없었다. 눈가와 이마에 크고 작은 주름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특히 퇴근하고 들어올 때면 아침에 하고 나간 화장이 다 지워지고 거기에 피곤함이 더해지면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점심에 수정 화장 같은 것은 귀찮다는 핑계로 해본 적도 없고 말이다.
"그래도 써 봐~ 그냥 편하게 수시로 슥슥 바르면 된대. 저녁 돼서 화장 다 날아가고 또 건조해지잖아. 지금 안 꾸미면 또 언제 꾸미니."
엄마는 그렇게 TV광고 카피 같은 말을 늘어놓으며 내게 화장품을 쥐어줬다.
내가 기억하는 30대의 엄마 얼굴은 이미 주름이 자글자글한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애들이 우리 엄마만 할머니라고 놀려!라고 울상을 지었을 정도. 작고 고왔던 얼굴이 그렇게 주름으로 가득 찬 것은 아빠 따라온 낯선 시골 동네에서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아이 셋과 아빠의 뒷바라지를 했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짐작해 볼 뿐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가 스무 살이 됐을 때부터 내 눈가 주름에 신경을 썼다. 대학을 간 이후로는 명절에나 겨우 본가에 갈 정도로 교류가 뜸했던 살갑지 못한 모녀 사이였지만 가끔 만날 때마 내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있으면 엄마는 나도 당신을 닮을까 봐 항상 염려스러워했다.
하지만 난 지금 그대로의 내 모습도 좋았고, 엄마의 걱정은 좀 귀찮은 잔소리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다 이제 나도 딸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자식을 낳으면 부모 맘을 알게 된다더니, 아이에게 나의 삶의 고됨이 대물림 되진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물론 나의 경우는 귀찮음이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난 일 안 하고 아이가 없을 때에도 화장을 잘 안 했거든요 엄마.......) 엄마 눈에는 그게 그렇게 짠해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오늘은 퇴근길에 화장을 고치고 들어가야겠다.
내가 귀찮음을 극복해서 엄마 맘이 조금 편해진다면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딸은 엄마와는 다른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구나, 안도감을 드려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참에 나도 나를 좀 더 꾸며보는 게 나쁜 일은 아니고 말이다.
젊고 아름답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욕망이니까.
아... 근데 집에 두고 나왔네? 습관은 참 어디 안 간다.
하하. 내일부터는 꼭 챙겨야지.
화장품 광고는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