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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져니 Dec 08. 2017

뚝심 있는 순둥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04 <리처드링클레이터: 꿈의 연대기 (Dream is Destiny)>

관심 넷,

#리차드링클레이터 #뚝심 #사람-이야기 


순둥이들은 안다.

순둥이가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뚝심을 한 번 부리기로 마음먹으면 그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간혹 심해와도 같아서

무엇이 들어오든지 간에 깊이, 깊이,

계속해서 집어삼켜 어떠한 잔물결도 일지 않다가

한 번 파도를 몰아치기로 하는 때엔, 모든 힘을 모아 묵묵히 내리치는 까닭에 누구도 그 파도를 당해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Let me sing you a waltz


한동안 그의 작품을 틀어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나의 선택은 비포선셋. 가장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던 영화였다.


그들이 나누던 대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파리의 거리들. 작품 속 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제시의 미간에 깊게 파인 주름까지도, 셀린의 묶다 푼 머리의 자국까지도.


@<Before Sunset> (2004, Richard Linklater)


이상하리만치 이 작품을 볼 때면 마음 한 쪽이 참 편안해졌다. 마치 마지막에 그들이 마시던 카모마일 티처럼, 영화는 당시 내게 꿀 한 스푼 들어간 카모마일 티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편안함은 무엇이었을까? 9년 만에 만난 그들의 모습에서, 대화에서, 나는 왜 그토록 편안함을 느꼈고 나의 가장 불안했던 시절을 의지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의 영화 속에 간직하고자 하는 그 정서를 나는 사랑했던 것 같다.


@<Richard Linklater: Dream is Destiny> (2014, Louis BLACK)


그 정서가 정확히 무엇이다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그것이 시간의 물리적인 양이 주는 힘에 대한 인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20살의 난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픽션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픽션은 실재의 물리적 시간과 맞물려 흐른다. 그의 비포 시리즈가 그러했고, <Boyhood>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의 시간, 힘, 인지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정서를 나는 명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내 시간 곁에 오랫동안 두곤 했다. 작품을 가만히 옆에 두고 있으면 그가 마치 나에게 무엇인가를 다정히 하지만 견고하게 타일러 주고 있는 듯 하였다. 씁쓸한 설렘이라 부르고 싶은 그것. 그 잔잔하지만 힘있는 토닥임을 오롯이 받으며, 그 순간 만큼은 나도 그렇게 그의 세상의 일부가 되어 편안하게 잠을 이루었다.


@ <Richard Linklater: Dream is Destiny> (2014, Louis BLACK)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세 명만이 속편을 바랬어요.

줄리와 이턴 그리고 나

-리처드 링클레이터
(<Dream is Destiny> 中)

다큐멘터리를 보며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씁쓸한 설렘 속에서 내가 어째서 그토록 깊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는지. 이 세 사람, 정말로 본인들이 살기 위해 그 세계로 돌아온 것이었다.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놓아버리지 못할 정도로 따뜻했던 그 세계. 에단호크의 표현에 의하면 "온실"과도 같은 그곳. 이 셋에게 비포 시리즈는 그런 곳이었다. 항상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고, 따뜻함이 있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려도 그대로 있어줄 것만 같은 그런 곳.



당신의 시간이 조금은 더디게 흐를지라도


절대적 시간의 양을 믿는다더니,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서 비롯된 힘을 사랑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사람마다 각자 다른 시계를 갖고 살아간다 믿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기모순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번 내가 속한 사회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시계에 쫓기고 허덕이며 인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이렇게 믿고 살지 않으면 도무지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개개인의 사이클을 정말 0% 존중해주는 사회이기 때문에 오기가 생겨 더 그렇게 믿고 산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느린 시계의 사이클을 갖고 산다. 누군가가 했던 표현 중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 있는데, “마치 '저기 저 후추통 하나만 좀 전해줘', 라고 하면 5분동안 한참 후추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들 말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 선천적 재능 중 가장 뛰어난 점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식별해내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이 재능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Richard Linklater: Dream is Destiny> (2014, Louis BLACK)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다큐멘터리를 보며 처음으로 생각해본다.


성장 과정을 담고 싶어 정말로 12년의 물리적 시간을 한 편의 픽션에 담아놓은 사람. 모든 투자자들이 가장 꺼리는 ‘언제 이익이 날지도 모르는’ 영화를 자신의 소소한 유년 시절의 기억들로 담아내고야 마는 사람.


이 사람의 이 시간을 영원히 지켜주고 싶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 본다 - 인물 다큐멘터리


인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물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가를 찬양하기 위함이 아닌 진실로 그가 걸어온 너무나도 고된 길들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물 다큐멘터리를 볼 때 그것이 이 고난의 길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통해 선전-찬양 인물 다큐멘터리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

"이렇게나 어려운 고난의 길 끝에 그는 이렇게나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로 끝난다면 선전-찬양, "이렇게 어려운 고난의 길을 지나 그는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고,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다"로 끝나면 조금은 신뢰할 만한 다큐멘터리. 일단 그 사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객관성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나마 구분을 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처드 링클레이터: 꿈의 연대기>는 꽤 괜찮은 다큐멘터리라고 칭하고 싶다.


@<Richard Linklater: Dream is Destiny>  (2014, Louis BLACK)


"그 영화를 찍고 나서 1년 후, 제가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도 저하고 만나려 하지 않고
제가 구상한 영화에 아무도 투자를 안 하고
......
그래서 일단 '뭐라도 해보자'의 마음이 되었죠."


- 리차드 링클레이터
(<리처드 링클레이터: 꿈의 연대기 Dream is Destiny> 中)


왜냐하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가 걸어 온 그 고난의 길이 절대 '멋있고 위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위대하고 대단해서 '과연 나는 저 사람처럼 할 수 있을까,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가 아닌, 되려 너무 측은하고 고독해서 '나는 저 사람처럼 하지는 못할 것 같다'가 되어버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는 이름은 명예롭고, 미래 걱정 없는 그런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의 이름이었지만, 실제로 그의 세계에서 그는 지속적인 아웃사이더였다.


삶을 '순환'이라 믿는 사람.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다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그 느낌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자신을 안주의 길로부터 밀어내는 사람. 너무나도 외롭고 고독한 그 길을 무던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단순한 선망이 아닌 어딘가 마음 한 쪽이 아리면서도 뜨거워지는 그런 응원을 보내게끔 만든다.


'숭고함'이라는 단어를 나는 이런 때에 사용하는 것이라 배워왔다.



사람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


@<Richard Linklater: Dream is Destiny>  (2014, Louis BLACK)



후추통을 5분동안 바라보고 있는 사람 말고도 내가 선천적으로 마음이 기우는 사람이 한 부류 더 있는데,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시간이 주는 힘 속에서 정서를 포착해내고, "바람없는 항해"를 몇 년 동안 이어가면서까지 그가 그의 영화를 통해 담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람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 사랑이 느껴지기에 그의 동료들은 기꺼이 그가 지키고자 하는 그 사소한 이야기들의 길 곁에 함께 서 있어주는게 아닐까.




다큐져니 관심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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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링클레이터: 꿈의 연대기 Richard Linklater - Dream is Destin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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