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까치 Mar 12. 2024

나를 칭찬하기 위한 글 [13/365]

2023년 12월 13일, 22:48

어제와 오늘은 잘 치댄 반죽처럼, 작은 틈도 없이 종종거리며 열심히 살았다. 덕분에 지금 눈과 정신이 닫히기 직전이지만, 기억나는 대로 적어둔다.


언제나처럼 아들은 동트기 전 일어나 나를 깨웠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들 손에 이끌려 거실로 나왔다. 아들 기저귀를 갈아주고, 빨대 컵에 물을 떠줬다. 아내가 거실로 나와서, 나는 부엌으로 가 사과 두 알을 깎았다. 포크를 꽂아 아들과 아내에게 주고, 전날 밤 돌려둔 식세기에서 그릇을 꺼내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냈다.


아내가 전날 만들어둔 국을 데우고, 계란찜을 만들었다. 몇 가지 반찬을 꺼내 아들 식판을 채우고 식탁을 차렸다. 아내가 아들을 앉혀 밥을 먹이는 동안 출근 준비를 했다. 그 사이 아내는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겨서 등원 준비를 끝냈다. 나는 아들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아들은 그냥 등원하는 법이 없다. 동네 구석구석 15분가량을 산책하고 등원했다.


어제는 담당 서비스 새 기능 출시일이었다. 10시부터 시작된 QA는 오후 늦도록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 작은 이슈들이 여기저기서 하나씩, 하 많이도 나왔다. 종일 신경이 바짝 서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아, 일단 차를 몰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운전 중에도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속이 울렁거렸다.


집에 왔다. 아내가 우리 부자에게 특식을 만들어줬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전래동화를 읽어주면서, 계속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했다. 날 선 마음이 휴대폰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노력했다. 그럴수록 더 날이 섰다.


불안한 마음으로 아들과 한 시간을 더 놀았고, 아내가 아들을 씻기러 들어갔다. 나는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장난감을 제자리에, 아들 입을 내복과 바를 로션을 꺼내뒀다. 새 수건을 물에 적셔 아들 자는 방에 걸어두고, 자장가를 틀어두고, 침구를 정리하고, 방 온도를 맞추고, 쓰레기 봉지를 묶었다.


다 씻은 아들을 아내와 함께 입히고 바르고 말렸다. 아들에게 인사하고, 아내가 아들을 재우러 방에 들어갔다. 쓰레기 처리하고, QA에 합류했다. 이때가 저녁 9시가 덜 된 시간이었고, 이날 출시는 새벽 2시께 끝이 났다.


자고 있는 아내 옆에 누웠는데, 종일 곤두선 신경 탓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몇 시에 잠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한 상태로 06:30 아들 손에 이끌려 거실로 나왔다. 어제와 비슷하게 아내와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손잡고 나와 산책과 등원을 시켰다. 회사로 차를 몰아 어제 작업의 핫픽스 목록을 정리했다. 뒤이은 과제 일정 회의를 하느라 하루가 다 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피로감을 느꼈지만, 저녁은 가족의 시간. 흥나게 놀아주고 다시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웠다. 아내 배에 얼굴을 묻고 30분 쉬었다가, 어제 못한 기록을 하나 마치고, 지금 이 글을 쓴다. 이 글은 나를 칭찬하기 위한 글이다. 매일이 이렇지는 않지만, 어제와 오늘은 최선을 다했다. 아내와 아들에게 힘든 내색 하지 않은 자신이 조금은 대견하다.


오늘 퇴고는 없다. 너무 피곤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