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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Mar 12. 2024

어쩌지 못하는 마음 [12/365]

2023년 12월 12일, 24:00

출근 시간이 비슷해, 종종 아침 출근길에 통화하는 친구가 있다. 엄밀히 고향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향 친구 같은 녀석인데, 비슷한 월령의 아들이 있어 여러모로 나눌 이야깃거리가 많은 친구다.


녀석의 최근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아들은 아직 연약한 편이라 흔한 감기에도 입원을 자주 한다. 하고 있는 프리랜서 비슷한 일은 수입도, 앞으로의 가능성도 뚜렷하지 않다. 이 일을 하기 전엔, 여러 회사에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 그렇다 보니 결혼한 이후에 안정적으로 돈을 번 기간이 사실상 없다. 녀석도 녀석의 아내도 많이 지쳤고, 둘 사이 다툼과 원망도 생겼다.


이 친구는 좀 특이한 구석이 있는데, 명쾌하게 표현하긴 어렵지만 ‘덜 불쾌하게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있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덜 불쾌하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 언어가 타인이 보기에 좀 얄팍하긴 해도 아주 얄밉지는 않다는 의미다.


이런 그의 성향 탓에, 녹록지 않은 최근 상황에 대해 설명할 때도, 듣는 나의 입장에서 그것이 슬프거나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었다. 오히려 ‘으이그 이 녀석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수준의, 맘에 오래 남지 않을 무게의 감상을 가져왔다.


오늘 아침 이 친구의 목소리와 어투는 평소와 달랐다. 아들은 오늘도 아파서 어린이집 등원을 못했는데, 아내는 불가피하게 출근했고, 녀석은 이미 올해 연차를 모두 소진했음에도 결국 결근을 한 상황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이 달까지만 일할 예정이고, 녀석은 나가서 성과를 내야 수입이 생기는 일을 하는데, 아이는 아프고 대신 돌봐줄 사람은 없는 아침이었다.


녀석의 목소리는 마냥 어둡지 않았다. 그렇다고 밝지도 않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당황한 것 같기도 했고, 체념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오늘 아침의 친구가 낯설었고, 그래서 안타까웠다. 그 마음, 내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오래전 언젠가 느꼈던 한 없이 막막한 마음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어쩌지 못한다. 도울 수 없는 일이며, 마음뿐이다. 상황이 좀 나아지기를, 꼬인 타래가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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