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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Apr 03. 2024

선배 아들의 메시지 [31/365]

2024년 4월 3일, 22:02

선배의 고민이 깊다. 그녀에게는 중학생 아들이 있다. 그는 근래 어느 등굣길에, 엄마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직업으로서의 축구를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나는 실제로 그를 만나본 적 없지만, 그와 그의 여동생에게 몇 번인가 크리스마스 편지를 쓴 일이 있다. 선배의 부탁으로 일종의 산타클로스 대필을 한 것인데, 매년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좋은 가족이 되어주어 선물을 드립니다.


그의 엄마인, 내가 참 좋아하는 선배를 봐도 그렇고, 이 편지의 내용만 봐도 그의 유순한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요즘은 유치원 형님반 아이들도 믿지 않는 산타클로스라니. 선물을 기다릴 여동생과, 마음 쓰는 엄마를 생각할 줄 아는 심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 회사에서 마주친 선배는 아들이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내게 보여줬다. 나는 그 결연함에 조금 놀랐는데, 내가 평소 듣고 짐작한 소년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완고함이 있었다. 여러 날에 걸쳐 고민하고, 시간을 들여 쓴 것 같았다.


메시지에는 그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동안 왜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공부 자체가 아니라, 축구에 매진해야 하는 시간을 다른데 쏟아야 하는 현실이 싫으며, 선수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해보지 않고는 역시 알 수 없다는 고민의 결과가 있었다. 끝에는 입단 테스트를 위한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걱정이 태산인 선배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기에, 나는 그 글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읽을수록 그가 대견하단 생각을 했지만, 불구경처럼 들릴까봐 온전히 말하지는 못했다.


내 오래된 시간을 되짚어봤다. 내가 그의 나이일 때, 나의 고민은 늘 주변과의 관계를 향해 있었다. 나 스스로를 향해 있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하나의 생각에 천착하고, 또 거기에 전부를 걸어본 적 없는 것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메시지를 사춘기 소년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누구나, 특히 짜여진대로 살아가는 요근래 아이들 누구나 그런 결행의 경험을 가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선수가 되는 길은 그 자체로 매우 좁고, 험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끝내 선수가 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제 그를 유순한 소년에서, 뭐든 잘 해낼 질긴 바탕을 가진 청년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끝내 그에게 전달되지는 못하겠지만, 앞길 창창한 그의 성공과 좌절 모두를 정성스럽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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