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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Apr 05. 2024

벚꽃 구경은 귀해서 [32/365]

2024년 4월 5일, 22:02

퇴근길 차창 너머로, 꽃구경에 심취한 사람들이 보인다. 보행로 안쪽으로 낮게 뻗은 왕벚나무 가지 앞에 선 이들은, 신호가 바뀌는 줄을 모른다. 길어진 해가 거의 기울어진 누르스름한 시간 곳곳에 하얀 꽃송이가 만개해 있었다. 일몰의 공기는 아직 서늘한데, 꽃 흐드러진 풍경은 사뭇 따뜻하다.


벚꽃은 개화에서 만개를 거쳐, 완전히 떨어지기까지 짧으면 열흘, 길면 이주 남짓한 시간을 산다. 그 시기가 보통 3월 하순부터 4월 상순까지로, 딱 지금이 꽃구경 하기 가장 좋은 날들이다. 덕분에 어제와 오늘의 모두는 조바심을 냈다. 수요일엔 봄 비가 내렸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모두가 꽃 걱정을 했다.


당장 어제 점심으로 먹은 메뉴도 헷갈리는데, 오래 전 이맘때 주말 내가 입었던 상의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7년 전 여의도에는 쥐색 아우터를, 6년 전 석촌동에는 흰색 린넨 셔츠를 입고 갔었다. 모두 지금의 아내와 만개한 벚꽃 구경을 간 날이었다. 조바심 낸 귀한 구경이라 그런 것인지, 계절이 넘어간 그 특유의 들뜬 분위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으로 올라오면서, 문득 이런 풍경을 앞으로 몇 해나 볼 수 있을지 헤아렸다. 운이 좋다면 사오십번쯤 되겠다 싶었고, 그 끝 즈음의 내 모습도 그려봤다. 그리 쓸쓸한 생각은 아니었다.


내일은 아내랑 아들이랑 또 오래도록 기억할 올해의 꽃구경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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