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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곱씹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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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치 Aug 31. 2017

불쌍하다는 말

[형용사] 처지가 안되고 애처롭다

그는 어머니의 작은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외종숙이 되는 분이고, 촌수로는 5촌인지 6촌인지 잘 헤아려지지도 않는 친척이다. 헤아려지지 않는 촌수만큼이나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몇 번인가 뵀던 것 같은데, 그때 뵀던 그분이 지금 말하려는 외종숙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지난해 가을, 외종숙이 폐암으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지 않으셨는지, 폐에 자리 잡은 종양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동안 외종숙 본인도, 가족들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고 들었다. 거의 만나지 못했던 터라, 그와 나는 함께 나눈 시간이며 추억이 전혀 없었다. '아이고 저런..' 말고는 별달리 표할 안타까움 역시 없었다.


외종숙의 죽음


퇴근을 앞둔 목요일 저녁, 상의할 일이 있어 엄마에게 톡을 보냈다. 어디냐는 내 물음에 '병원 가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부분 어른들이 그렇듯, 엄마의 문장도 늘 군더더기 없이 건조해 가끔은 도대체 어떤 상황이고 기분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해가 다 진 저녁에 '병원 가고 있다'라니.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며 답을 재촉했다.


외종숙이 돌아가셨다. 지난가을 잠시 떠올렸던 그 외종숙이 일 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소식을 접한 당시에도, 치료를 하기엔 늦은 시기라고 들었었다. 외종숙의 소식을 전한 엄마에게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지난가을이나 올해 여름이나, 외종숙과 나 사이가 궁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고 저런..'


'응 불쌍하다'


의무적으로 안타까움을 표하는 내게 엄마는 다섯 글자짜리 답을 보내왔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외종숙의 황망한 죽음이 아니라, 엄마의 답장이 그랬다. 딱히 더 보탤 말이 없어, 답 없이 가방을 챙겨 회사를 빠져나왔다. 퇴근길 차량 행렬로 들어서는 내내 나는 '불쌍하다'는 말을 생각했다. 울적했다.


지나간 시간들


의외로 사람들은, 타인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거나 그 생각을 쉽게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겪어온 일들이 많을수록 그런 경향이 짙다. 아이들은 쉽게 말하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엄마도 그랬다. 어쩌다 티비에서 보게 되는 처지가 딱한 사람들에 엄마가 '불쌍하다는 말'을 한 기억은 많지 않다. 그 대신 그들의 지나간 시간을 유추해보거나, 현실을 말하거나, 가끔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그런 엄마의 손 끝에서 나온 '불쌍하다'는 글자들은 그래서 더 울적했다. 며칠을 기다려 엄마에게 외종숙의 지나간 시간들을 청해 들었다.


외종숙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운전 일을 하며 가족을 건사했다. 성실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치곤 많이 낡고 작은 집에 살았다. 그 집 말고는 달리 가진 게 없었다. 그 외의 것들은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너도나도 서울로 몰리던 시절, 시골에서 막 상경한 사촌 여동생을 한 집에서 살뜰하게 챙겼다. 외종숙은 병에 들었다. 그는 평생 술도 담배도 먹지 않았다.


불쌍하다


나이 든 사람들은 타인에게 불쌍하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딱한 처지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고, 그럴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조심스러운 말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처지가 합당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른들에게 이 말은, 각자가 지나온 시간들을 기준 삼아 타인의 그 딱한 처지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판단한 후에야 비로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엄마는 '불쌍하다'고 말했다. 누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엄마는 이렇게만 말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게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일찍 갔다. 좋은 사람이 왜 좋은 걸 모르고 살아야만 했는지는 엄마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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