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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Dec 01.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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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는 북한산이 보이는 집을 처분하고 나오미를 종로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엄마 장례식 내내 한 번도 울지 않던 나오미가 간호사 언니와 헤어질 땐 엄청난 눈물을 쏟았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를 우려한 외조부가 가사도우미만큼은 손녀와 계속 있어주기를 바랐다.


외조부는 나오미를 비싼 사립학교에 입학시켰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와 비싼 부모를 둔 한국 학생들이 초등, 중등, 고등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설립 학교였다. 이곳에선 아무도 그녀를 빤히 쳐다보지 않았다. 나오미는 즐거운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나오미가 중학생이 되고부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처음으로 이모라 부르던 가사도우미와 마찰을 빚었다. 나오미는 계속해서 이모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하루는 나오미가 이모에게 자신이 뚱뚱하지 않냐고 물었다. 전혀 그렇지 않고 예쁘기만 하다는 이모에게 나오미가 발끈했다.


“왜, 이모는 언제나 나를 예쁘다고만 해요! 내 엄마가 아니라서 그런 거예요!”

나오미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모는 주중에만 나오미 집에 머물고 주말이면 노모 혼자 있는 집으로 갔다. 토요일 아침, 평소처럼 집으로 가기 위해 웃을 차려입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그녀는 더 이상 중년이 아니었다. 나오미가 다가와 옷차림이 할머니 같다 했다. 씁쓸했지만 이모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런 태도가 나오미를 자극했다. 자신을 무시한다며 짜증을 냈다.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한 이모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나오미는 울기 시작했다. 그 주말은 이모가 집에 가지 못했다. 주말 내내 나오미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나오미는 일부러 이모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춘기 소녀의 불안한 투정을 받아주기에 이모는 늙어있었다. 마침내 이모는 나오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떠났다, 어린 시절 순하디 순한 나오미 모습만을 가슴에 담고.


그 일로 나오미는 한동안 우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을 되찾았지만 그녀에겐 이모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녀가 ‘합법적으로’ 괴롭힐 누군가가. 처음에 그 대상이 외조부의 운전기사와 젊은 가사도우미였다. 하지만 이들은 나오미에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국 나오미는 자신이 괴롭힐 대상을 밖에서 찾기 시작했다.


중학교 초기, 그녀와 어울리는 친구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때그때 마음 끌리는 아이들이 그녀 친구가 되었다. 2학년이 시작되면서 특정 아이들하고만 어울렸다. 특별한 학교였던 만큼 아이들 비행도 특별했다. 어떻게 구했는지 벌써부터 구하기 힘든 약물에 중독된 아이들이 있었다. 나오미 패거리는 이들을 통해 술과 담배를 구했다. 학교에서 얌전하던 이들은 후미진 으슥한 장소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비싼 술을 마시고 비싼 담배를 피워댔다.


어느 날, 근처에 노숙인 한 명이 있었다. 아이들은 야생 동물을 발견한 듯 신기해했다. 아이들이 다가가자 노숙인이 손을 들고 입을 쩍 벌렸다. 패거리 중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나 여기 침 튀었어!”

야생동물 독으로부터 친구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노숙인을 발길질했다. 축축하고 오줌 냄새 베인 뒷골목이 욕설과 비명이 가득 찼다. 그렇게 하고 그들은 달아났다. 패거리는 죄책감 대신 까닭 모를 쾌감을 느꼈다. 처음으로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패거리는 혼자 있는 노숙인을 찾아다녔다.


한적한 뒷골목에서 노숙인 한 명을 찾았다. 전 재산이 담긴 꾀죄죄한 보따리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머리맡에 술병이 뒹굴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패거리 중 하나가 노숙인을 발로 찼다.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노숙인은 앙상한 얼굴에 움푹 파인 눈과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있었다. 이국적으로 보였다. 단잠을 방해받은 사내는 치아가 빠진 턱을 씰룩이며 인상을 썼다. 그때 한 녀석이 주먹으로 사내 얼굴을 가격했다. 별 미동 없자 다른 녀석이 뺨을 때렸다. 처음으로 때려보는 어른의 뺨은 딱딱했다. 아이들은 경쟁하듯 앞다투어 뺨을 때렸다. 이번엔 발길질을 했다. 발길질이 거세졌다. 얼굴에서 흐른 피가 덥수룩한 수염에 붉은 열매처럼 맺혔다. 비명 지르며 맞고만 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섰다. 키가 상당히 컸다. 쑥 들어간 눈을 부릅뜨자 아이들이 움찔했다. 이 번엔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았다. 나오미 패거리가 겁을 먹었다. 평소라면 구경만 했을 나오미가 그날은 직접 나섰다. 사내 앞으로 당당하게 걸어가 뺨을 힘껏 후려갈겼다. 사내는 금세 겁을 먹고 울기 직전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아이들이 다시 사내를 바닥에 꿇게 했다. 쭈그려 앉은 사내는 자신의 보따리를 움켜쥐고 짐승처럼 포효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사내는 결국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그날 집에 온 나오미는 서랍을 뒤져 감춰둔 아빠 얼굴이 담긴 모든 사진을 들고 뒷마당으로 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사진을 바라보았다. 빨갛게 칠한 입술에 물린 담배가 타들어갔다. 한 참 바라보던 그녀가 모든 사진 속 아빠 얼굴을 담뱃불로 지졌다. 야외 화로에 구멍 뚫린 사진을 던져 넣고 휘발유를 뿌렸다. 물고 있던 담배를 던지자 퍽 소리와 함께 불길이 일었다. 순식간에 인화용지가 새까맣게 되었다. 노숙인 뺨을 후려칠 때 일던 쾌감이 살아났다. 죄책감은 감히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오미는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빠가 돌아오게 해 달라 기도했다. 눈물로 후회하는 아빠를 용서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아빠가 엄마를 대신하리란 믿음이 장례식장에서도 눈물 없이 엄마를 보내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빠는 오지 않았다. 기다림이 실망으로 바뀌고 실망이 분노로 바뀌었다. 현실은 동화 속 이야기와 달랐다.


그날 나오미는 아빠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기억뿐 아니라 삶 속에서도. 신기하게도 그런 일은 가능했다. 머릿속에 들어있던 삐쩍 마른 혼혈 사내는 기다랗고 시커먼 모습으로 바뀌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림자 인간으로 변했다.

 

패거리 만행은 얼마 가지 않아 끝이 났다. 패거리 중 한 녀석이 노숙인 양말에 라이터를 가져다 댔다. 뜨거워 잠을 깰 거라는 기대와 달리 양말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하반신을 덮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노숙인 바지와 양말에 인화성 물질이 묻어있었다. 놀란 아이들은 그대로 달아났다. 때마침 근처를 지나던 행인이 있었다. 달려와 진화를 시도했지만, 가여운 거리의 희생양은 따뜻한 날씨에도 겹겹이 껴입은 옷 탓에 심재성 2도 화상을 피할 수 없었다. 모든 장면이 인근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날따라 학교에 고가의 외제차가 즐비했다. 경찰차도 보였다. 범행에 가담한 아이들이 교장실로 불려 가고 학부모들이 학교로 왔다. 만약 아이들이 비싼 부모를 두지 않았다면 학교 대신 소년원에서 남은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역시 비싼 부모들은 달랐다. 호들갑 떨지 않고 ‘품위’ 있게 상황을 매듭지었다. 학부모들은 국가 지원을 받는 병원을 찾았다. 그 병원의 시설 개선 명목으로 얼마의 돈을 기부했다. 이들은 병원장의 안내로 노숙인 앞에 다가섰다. 노숙인은 하반신에 붕대를 칭칭 감고 말없이 누워있었다. 학부모 한 명이 노숙인 손을 잡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하얀 봉투를 이불 밑으로 밀어 넣었다. 노숙인은 손을 잡아 빼며 학부모와 봉투가 들어간 이불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병원장이 웃으며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학부모들이 병원장을 따라 사라지자 노숙인은 봉투를 꺼내 살폈다.


“새끼들이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봉투를 가슴팍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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