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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Dec 06.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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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패거리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나오미는 학교를 옮겼다. 말수가 줄었다. 하루 종일 말하지 않는 날이 늘었다. 그러다 얼마 뒤 두통을 호소했다. 사람 눈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몇 날이나 지속되던 두통이 멎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하던 수많은 생각이 두통의 원인이었다. 그 생각들이 의식이라는 수면 위로 떠오르자 두통은 멎었다. 대신 머릿속 깊은 곳에서 뛰쳐나온 생각들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불안했기에 생각이 많았을 수도 있었다. 여하튼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몰래 하던 화장은 고사하고 씻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나오미 모습은 외조부까지 불안하게 했다. 상태가 심각하다 판단한 그가 외손녀를 최고 의료진에게 데려갔다.


정신과 치료 초기 나오미는 약에 취해 잠만 잤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울면서 잠을 깼다. 그날 하루 꼬박 울기만 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눈빛이 변해있었다.

나오미는 차분했고 자신이 벌인 일들에 대해 극도로 미안해했다. 상담치료가 추가되었다. 아직까지는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우울했고, 깨면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나오미를 담당한 상담센터에 몇 명의 전문의가 있었다. 가장 젊은 선생이 나오미를 유독 예뻐했다. 나오미도 그녀를 큰언니처럼 따랐다. 상담센터 책장에 꽂혀있는 앙리 베르그송이 눈에 들어왔다. 앙리? 친근한 이름이었다. 나오미는 매번 그 책이 그 위치에 있는지 확인했다.


어느 날 책장에 앙리가 보이지 않았다. 앙리는 언니 책상에 펼쳐져 있었다. 앙리를 궁금해하는 나오미에게 언니가 이야기했다. 언니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넘어서는 영역까지 관심을 두고 있었다. 데이비드 호킨스, 디팩 초프라 등의 이름을 섞어가며 뜬구름 잡는 듯한 소리를 멋들어지게 했다. 태어나 처음 듣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가 나오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인간 영혼은 불멸이며, 어느 경지에선 모든 이의 의식이 연결되어 있으리라. 죽은 엄마까지 다시 만날 것 같았다. 자기를 버린 아빠를 이해할 것 같았다. 나오미 정신에 희망이 스며들었다. 언젠가 아빠를 만나면 용서하리라. 나오미는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세상과 영혼이라는 무한한 세계에 눈을 뜨고 있었다. 우울감은 약해지고, 악몽은 아주 가끔만 꾸고, 대인기피증이 한결 나아졌다.

 

시간 흘러 나오미는 대학에 들어갔다. 최고 의료진 덕인지, 그때쯤엔 그녀의 대인기피증이 새로운 정신 기제로 승화되어있었다. 뭐든 시도하려 했고 기꺼이 도전하려 했다. 조금이라도 불안할 땐, 오기를 가지고 낯선 이들과 소통하려 했다.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떨어졌다. 나오미 머리 위에도. 대학 교정에 차려진 동아리 부스가 신입생을 유혹했다. 그녀가 부스 하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ESP 세계평화 동아리가 신입생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근처 맥줏집에 테이블 몇 개를 붙여놓고 동아리 회장이라는 선배가 짧은 인사말을 했다. 집게와 중지를 붙인 양손을 이마에 대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회장님께선 신입생 여러분에게 텔레파시를 쏘고 계십."

회장 옆에 키 작은 선배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작은 맥줏집 안이 왁자지껄했다. 신비주의에 관심 많은 나오미가 반은 장난으로 선택한 동아리는 역시나 재미있었다.

동아리방은 반지하였다.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입구 쪽 벽에 책장이 있었다. 그곳에 4차원의 신비나, 심령 세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같은 제목을 단 책이 여러 종교 경전과 함께 꽂혀있었다. 책장 맞은편 창문 아래 잡다한 것을 담아 둔 상자와 부서진 의자, 현수막이 뒹굴었다. 이것들을 가리기 위해 파티션을 사용했다. 때문에 반 지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더 차단되어 낮인데도 어둑어둑했다. 누군가 파티션 뒤에 매트리스와 침낭을 가져다 놓았다. 가끔 넉살 좋은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나오미는 전날 두고 온 소지품을 찾아 동아리를 찾았다. 보통 그 시간엔 학생들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동아리 방이 더 오싹했다. 있을 법한 곳을 다 뒤져도 소지품은 나오지 않았다. 단념하고 돌아갈 때 창가 쪽에서 소리가 났다.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야릇한 호기심이 그녀를 붙잡았다. 나오미는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파티션 쪽으로 갔다. 다시 한번 크게 숨을 참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으악!”

불쑥 튀어나온 나오미를 보고 남학생이 비명을 질렀다. 놀란 학생은 뒷걸음질 치다 현수막 막대에 걸려 넘어졌다. 입이 그때까지 벌어져 있었다. 머리가 부스스하고 둥근 안경이 코 아래에 걸쳐있었다. 자주 놀러 오는 덩치 큰, 옆 동아리 선배였다.


“너 때문에 깜짝 놀랐잖아!”

전날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온 선배는 그곳에서 잠을 잤다. 분위기 파악 못하기로 소문난 선배였다. 나오미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근데, 뭐 좀 먹으러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묻는 선배에게 그녀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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