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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Dec 10.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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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과에서 학생들이 모였다. 검정 뿔테 안경을 끼고 맨 앞에 앉은 학생이 쉴 새 없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강의시간을 훌쩍 넘겼기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그날따라 날씨가 더웠다. 한여름도 아닌데 강의실 온도가 사우나 수준이었다. 오래된 강의실이 열기로 가득했다. 학생들 머릿속에선 얼음 잔에 담긴 맥주가 목구멍을 넘고 있었다. 낮부터 마셔댈 명분은 충분했다. 때 이른 폭염, 정해진 시간을 넘긴 강의, 무엇보다 맨 앞줄 짱구 머리 뿔테 안경! 학생들이 짱구 뒤통수를 향해 구긴 종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이 야유로 바뀌었다.


“여, 대갈장군! 이 형님이 소맥 한잔 쏠 테니 그만 나가지, 아니 두 잔 쏘지!”

누군가 우스개 소리를 던졌다. 이에 질세라 학생 몇이 더 가세해 짱구를 놀려댔다. 학생들 웃음소리로 강의실이 더 소란스러웠다.


강의명 ‘인간학’. 지난해 신설된 교양과목이었다. 학생 대부분이 점수를 잘 준다는 이유로 이 수업을 택했다. 수업은 언제부턴가 짱구가 쏟아내는 질문에 교수가 답하는 형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여름에도 긴소매와 따뜻한 보양식만 고집하는 늙은 교수는 짱구가 쏟아내는 질문 하나하나에 성심 성의껏 답했다. 들은 자신이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수업시간 넘기는 건  수 없었다. 종강을 앞두고 날씨가 더워지자 그동안 쌓온 감정이 폭발했다. 유달리 오줌보가 작거나 생각을 곧장 행동으로 옮기는 용자들은 이미 자리를 떴다.


학생 하나가 던진 종이비행기가 보양식 얼굴에 불시착했다. 보양식이 비행기를 펼쳤다. 구겨진 종이에 ‘fuck you’라고 휘갈겨있었다. 친절하게 한글 번역도 보였다. 보양식이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강의실이 고요해져 있었다. 노교수 코 끝에 대롱거리는 안경 너머로 얇은 눈꺼풀이 껌뻑였다. 주변에 구겨진 종이와 비행기가 수북했다.


“아!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입니다. 가고 싶은 학생들을 가도 좋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보양식이 수업 종료를 선언했다.

우르르 학생들이 몰려나갔다. 몇몇은 앞문 쪽으로 걸어가며 짱구를 향해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뜨거운 체온 한 무더기가 빠지자 강의실이 조금은 서늘해졌다. 조용해진 강의실에 짱구와 보양식, 여학생 한 명이 남았다. 짙은 눈썹을 가진 이 학생은 짱구 바로 뒤로 자리를 옮겼다.


“자, 자! 오늘 강의 시작할 때 말했요! 다시 한번 말할게요.”

보양식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입 꼬리에서 허옇게 침이 새어 나왔다. 말이 빨라졌다.


“모든 정보 소통에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있고 그 둘 사이 정보는 암호의 형태로 전달된다 했죠? 송신자가 수신자에게 암호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면, 수신자는 그 암호를 해독해서 정보를 얻습니다. 이 과정에 노이즈라는 것이 끼어드는데 정보 내용까지 왜곡할 수 있다고 했죠. 그러므로 노이즈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소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죠.”

강의 초반 자신이 칠판에 그린 송신자(sender), 수신자(receiver), 노이즈(noise)의 관계도를 손으로 두드렸다.


“네, 네, 교수님! 그건 이미 말씀하셨고요. 제 질문은 노이즈 없는 정보전달이 이론적으로, 네, 바로 그겁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가입니다.”

짱구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글쎄……”

보양식이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교수님! 텔레파시라는 현상은 어떤가요? 이 경우엔 노이즈 없는 소통이라 할 수 있나요?”


“텔레파시? ESP를 말하는 것이군! 정신감응이라……”

인간이 생각을 할 때 뇌파가 발생한다. 생각은 관념이지만 뇌파는 측정 가능한 물리량이다. A가 생각할 때 방출되는 뇌파를 측정한다. B의 뇌에 그 뇌파와 동일한 파동이 발생하게 한다. 이 경우 B는 A와 동일한 생각을 할 것인가? 만일 이런 소통을 텔레파시라 한다면, 이 경우에도 노이즈가 없진 않을 것이다. 정신영역이 생물학적 뇌의 소산이라 믿는 보양식은 텔레파시라는 것도 결국 인간 뇌의 작용이며 ‘이데아’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군더더기 훼방꾼, 즉 노이즈 없는 소통은 있을 수 없다 단언했다.


그제야 자신이 짱구 머리 뿔테의 유치한 질문에 놀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많이 한 탓에 목이 말랐다. 보온병은 이미 텅 비었다. 앞자리에 걸쳐 놓은 리넨 재킷을 집었다. 흩어진 강의 자료를 모을 때 짱구 녀석이 또 질문했다.


“한 번이라도 텔레파시를 과학 영역에서 다루려 한 적이 있었나요?”


“냉전시절에 소련과 미국에서 그런 연구들을 많이 했어요. 관련 서적을 찾아보세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짱구 뒤에 앉은 여학생을 바라보고 애원하듯 말했다. 그녀 눈빛이 특이했다. 딴 세상에 와있는 것 같았다. 목이 점점 말라왔다. 강의실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더 있다간 큰 일 날 것 같았다. 심기증이 발동한 보양식이 서둘러 강의실을 떠났다.


짱구 머리 뿔테가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눈과 마주쳤다. 그 눈엔 호기심이 초록빛과 함께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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