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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Nov 30.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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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

여학생 한 명이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어느 날 한국인과 프랑스인 사이에 태어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의 동거가 시작되고 얼마 뒤 아기가 태어났다. 나오미라 이름 지었다. 학생 신분인 외동딸이 아기까지 낳았다는 소식에 그녀 아버지는 곧장 파리로 날아갔다. 장래 사위가 될지 모를 ‘튀기 녀석’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키가 크고 마르고 섬세함이 여성스러웠다. 첫인상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눈물로 호소하는 딸의 성화에 못 이겨 남은 유학생활 동안만 지켜보기로 했다. 초록 눈동자를 가진 손녀는 예뻤다. 그는 세 사람을 위해 경제 장치를 마련해 두고 귀국했다.


학생 부부는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딸이 학업을 마쳤을 때 아버지는 이들을 한국으로 불렀다. 딸은 동거남과 원하던 결혼식을 올렸다. 딸의 아버지는 사위에게 자신의 사업체 한 자리를 맡겼다. 그럭저럭 한국살이도 평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사라졌다.

편지에는, 어디서나 외국인이었던 자신의 신세,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답답함, 남몰래 앓아온 우울증에 대한 한탄과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니 제발 자신을 찾지 말라는 당부가 적혀있었다. 그에게 어떠한 연락도 닿지 않았다. 누구보다 충격받은 아내는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만 쏟았다. 나오미가 4살 무렵이었다.

며칠 뒤 나오미는 거실에 쓰러진 엄마를 보았다. 입에서 나온 하얀 알약들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몸은 회복되고 있었지만 그녀 정신은 한동안 슬픔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입을 다물고 밝은 곳만 쳐다보았다. 그 꼴을 지켜보던 나오미 외조부는 그날 이후 집 떠난 사위 이름을 집안의 금기어로 만들었다. 슬픔의 늪에서 그녀를 구한 것은 나오미였다. 어린 나오미 눈빛은 자신을 포함한 어떤 이가 느끼는 슬픔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였다. 배우자의 빈자리를 모성애가 대신 우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몇 해가 흘렀다. 자살시도에서 목숨을 부지한 대가인지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던 천식이 심해졌다. 30분 정도 대화가 힘겨웠다. 점점 시간이 줄어 10분 이상 대화는 불가능해졌다. 무슨 일을 하든 쉽게 지쳤다.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심한 기침과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다시 살아난 우울감까지 덩달아 그녀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성애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몸 상태가 안정되면 딸부터 찾았다. 어린 딸을 꼭 껴안고 고통을 버틸 힘을 얻었다. 딸은 애처로운 눈길로 마법의 주문을 중얼거렸다. 딸이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치유법이었다.

죽음이 자신을 누르는 무게보다 딸이 겪을 슬픔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것은 진작에 알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깨달았다.


가을이 짙어졌다. 파란 하늘 아래 북한산이 낙엽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어느 아침, 그녀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잠을 깬 나오미가 엄마를 찾아 들어갔을 때, 엄마는 그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엄마가 어느 때보다 예쁘게 보였다. 엄마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다가갔다. 엄마 옆에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엔 엄마, 아빠, 더 어린 자신이 담겨있었다. 언젠가 본 남산타워가 뒤 보였다. 하늘이 그날 아침처럼 파랬다. 엄마, 아빠는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흰구름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린 자신은 햇살 탓인지 얼굴을 찡그렸다.


눈물 흘린 자국이 있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고통의 몸부림이나 부자연스러운 흔적 없이, 젊은 엄마는 자신에게 펼쳐졌던 세계의 마지막을 그렇게 맞이했다. 7살이 조금 지난 딸아이는 아빠에 이어 엄마마저 그렇게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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