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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Dec 18.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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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왔습니다.”

서울을 벗어난 택시가 경기도 어디쯤에서 멈췄다. 거리가 한산했다. 택시에서 내린 동희 눈에 길 건너 공원이 들어왔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있었다. 공원을 출발한 비둘기 떼가 도로를 가로질러 드림캐리어社 건물 방향으로 날아왔다. 건물 앞에 두 사람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 칩 2 희생자 유족 같았다. 동희는 긴장되었다.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바람이 불어 그나마 고마웠다. 심층취재 때 동행하는 사진 전문 기자가 이번에는 없었다. 드림캐리어社는 한 사람만 출입을 허가했다.


건물의 모든 면이 반듯반듯하고 규칙적이었다. 외벽으로 사용된 짙은 푸른색 유리 때문에 건물이 심해 속 거대 생명체처럼 보였다. 바람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전날 마신 술 탓인지 속까지 울렁였다. 입구를 겨우 찾았다. 키패드가 달린 네모 박스가 없었다면 유리 벽과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사람이 겨우 들만한 크기였다. 그마저도 굳게 닫혀있었다.


‘모든 방문객은 인터폰을 이용해 주십시오’

손잡이 윗부분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인터폰을 누르자 상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림캐리어입니다.”


“라이프저니의 정동희 기자입니다.”

삐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10미터 간격을 두고 산양 뿔처럼 휘어진 계단 2개가 2층까지 뻗어있었다. 현대적 외관과 달리 내부는 고풍스러웠다. 휘어진 계단 사이로 1층 안내데스크가 보이고 그 옆에 검색대가 있었다. 인터폰 목소리 주인공이 안내데스크에 앉아있었다. 동희가 건넨 신분증을 받고 방문증을 내밀었다. 검색대를 가리켰다. 건장한 보안요원 두 명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은 키가 195는 되어 보였다. 가슴에 무전기를 달고, 허리에 열쇠고리, 가스총, 곤봉, 휴대폰 케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벨트를 차고 있었다. 한 손으로 벨트를 움켜잡고 다른 손엔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손도 컸다. 모자에 가리어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은 앳된 모습이었다. 손에 든 바구니를 동희에게 내밀었다. 동희 소지품이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와 가방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X선 검색대 속으로 들어갔다. 가방 형체가 화면에 보이고 그 속에 볼펜 두 자루, 포장 뜯은 껌 한 통, 칫솔, 치약, 수첩, 열쇠 꾸러미, 구겨진 종이, 그리고 책 한 권이 보였다. 휴대폰은 바구니 속에 지갑과 함께 담겨 있었다. 동희는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 사이 다른 보안요원이 동희 몸을 수색했다. 그는 야물어 보였다. 크리켓 배트처럼 생긴 스캐너를 몸에  대고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씩씩대는 숨소리가 귀에 울렸다. 나이 든 사람 몸에 쌓이는 노네날이라는 물질, 홀아비 냄새라 부르는 그 냄새가 났다. 보기보다 나이 들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수모를 겪는다 느껴질 만큼 출입절차가 까다로웠다. 이 모든 절차 뒤에 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정장 차림, 40대 중반, 여성. 긴 파마머리가 통통한 얼굴, 둥근 안경과 잘 어울렸다. 하얀색 러닝화가 조금은 튀었다. 동희만큼 키가 컸다. 그를 주시하며 미소 지었다. 키 195 요원이 검색대를 통과한 가방손을 넣으려 했다


“자! 대표님께서 초대하신 분이니 적당히 하고 들여보내 주세요.”

러닝화 정장이 엄지와 중지를 튕기며 말했다. 195가 바구니와 가방을 동희에게 돌려주었다. 무안한 표정으로 는 모습이 역시나 어린아이 같았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최근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

하얀 러닝화가 산양 뿔 하나를 타고 뒤따라오는 동희에게 말했다. 2층 복도 벽을 따라 포스터들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동희 눈에 낯익은 한 장이 들어왔다. DC-005 ESP Painter, 퍼펙트 드로잉 헬멧 포스터였다. 동희가 포스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포스터 한가운데 제품 이미지가 큼직하니 있고 우측 상단에 당시 잘 나가던 만화가 K 씨가 울상을 짓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 같은 만화가는 다 굶어 죽는 거 아냐?”

K 씨 입꼬리에 말풍선이 달려 있다. 포스터 하단에 잔디밭 위를 뛰는 아이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진지한 아이들 표정이 우습다. 그들이 잡으려는 무언가는 가운데 박혀있는 헬멧일 것이다. 색감은 촌스럽고 컨셉은 유치하다. ‘병맛’ 포스터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 시대 포스터답다. 포스터 속 아이들처럼 자신도 저 헬멧에 열광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마음을 들키지 않게 태연한 척했지만 닭살이 돋았다. 멈춰 선 동희를 보고 러닝화가 되돌아왔다. 함께 포스터를 감상했다.


“초기 모델이라 문제점이 많았죠.”


“어찌나 갖고 싶던지 꿈도 꿨어요.”


“신기하긴 했죠.”

러닝화가 동희에게 눈짓했다. 다시 그녀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복도 끝에 대표이사 사무실이 있었다. 맞은편 벽엔 문제의 칩 2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러닝화가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동희가 잊고 있던 긴장감이 되살아났다. 러닝화는 동희만 들여보내고 밖에서 문을 닫았다. 대표로 보이는 이가 책상에서 앉아있었다. 딸깍, 문 닫히는 소리에 동희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바로 했을 때 그녀가 바로 앞에 서있었다. 오른손을 내민 채.


“라이프저니, 정동희 기자님? 드림캐리어 김 나오미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입을 벌릴 때 보이는 토끼 같은 앞니. 165cm가량 되는 키. 착 달라붙는 검정 긴소매. 인디고 청바지. 평평한 컨버스 운동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구불거리는 머리칼. 짙은 눈썹. 불안한 듯 흔들리는 초록 눈빛. 동서양의 조화. 어려 보이면서 성숙함이 느껴지는…… 역시 인간 외모는 신기하지…… 동희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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