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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Dec 24.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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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가 이런 건가?’

인터뷰를 마친 동희가 건물을 나서며 생각했다. 기대보다 허무했다. 나오미 모습이 아른거렸다. 건물 앞에 시위하는 사람 수가 늘어있었다. 차갑고 규칙적인 패턴을 가진 건물을 다 빠져나왔을 때 누군가 동희를 불렀다. 돌아보니 검정 뿔테 안경을 낀 키 큰 사내가 손을 흔들고 다가왔다. 눈이 약간 처지고 아토피 피부염 때문인지 볼 주위가 발그레했다는 것만 빼면 평범한 사내였다.


“정동희 기자님이시죠?”


“네.”


“드림캐리어 수석연구원 한칠오라고 합니다.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칠오가 내민 명함에는 글자 없이 숫자 175가 양각되어 있었다. 그 밑에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칠오는 얼떨떨해하는 동희를 건너편 공원으로 이끌었다.

 

하얀 시멘트 바닥 위로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공원에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략 30M 간격으로 설치된 벤치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한 곳에 노인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칠오와 동희 앞으로 레깅스 차림의 여자 두 명이 헐렁한 티 셔츠를 펄럭이며 뛰어갔다. 바람이 불었다. 하늘이 파랬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동희는 입을 꾹 다문 칠오 눈치를 살폈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길 건너 드림캐리어사가 보였다. 여자 대표 얼굴 떠올다. 언젠가 자신도 여자를 만나 결혼할 것이다.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자신에게 감동한 상상 속 아내 모습이 그려졌다. 자신 부모가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자신이 완벽한 남자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때 10미터 정도 앞에 수풀이 흔들렸다. 움직이던 수풀 속에서 하얀 털북숭이가 솟아올랐다. 동희를 향해 통통 튀어왔다. 동희 머릿속에서 갑자기 엄청난 양의 뉴런이 번뜩였다.


‘정신 차려! 개야! 너는 개를 무서워하잖아! 그것도 흰색이야! 지금 너에게 뛰어들고 있어! 곧 너를 덮칠 거야!’

수많은 생각이 순식간에 몰려오자 뇌에 과부하가 걸렸다.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과 놀아 줄 듯한 친구가 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흰색 세인트버나드 어쩔 줄 몰라했다. 기절한 친구 얼굴을 핥아주었다. 목줄을 손에 쥔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동희가 눈을 떴을 때 여러 얼굴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중년의 얼굴, 안경 낀 짱구의 얼굴, 혀를 내민 채 웃는 개의 얼굴. 그 뒤로 수군대는 얼굴 몇이 더 보였다.


“괜찮으세요?”

중년 남자가 말했다. 목줄에 단단히 묶인 세인트버나드가 동희를 보고 갸웃거렸다.


“저 개부터 좀 치워주세요.”

동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남자는 저만치 떨어진 나무 둥치에 흰둥이를 묶고 돌아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줄이 빠지는 바람에…… 정말 큰 실수를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제가 개를 무서워해서요, 잠시 놀랐나 봐요. 이젠 괜찮습니다.”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며 동희가 말했다.


“저 녀석이 순한데 잘 생긴 사람만 보면 같이 놀자고 막 덤빕니다.”

중년 남자는 농담 같은 말을 진지하게 했다. 몇 번이나 괜찮은지 묻는 그에게 동희는 미소로 답했다. 남자는 명함을 내밀며 추후라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했다. 반려견과 주인은 서로를 닮는다더니 중년 남자는 흰둥이처럼 착해 보였다.


“정말 병원에 안 가도 될까요?”

저만치 멀어지는 흰둥이와 주인을 바라보는 동희에게 칠오가 말했다. 그제야 칠오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벤치에 앉아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대로 돌아온 동희는 칠오가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이유를 궁금해했다. 동희 마음을 읽은 듯 칠오가 입을 열었다.


“마침 점심때도 다 되었고, 괜찮으시면 근처에 자주 가는 펍이 있는데, 그곳에서 뭐라도 드시면서 말씀 나눌까요?”

칠오가 풍기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동희는 공원 밖으로 따라나갔다.


칠오가 안내한 펍은 아담했다. 간판에 ‘라 푸틴(La Poutine)’이라 적혀 있었다. 가게 앞에 나무로 단을 쌓고 야외용 테이블 몇 개를 두었다. 두 사람은 실내보다 밖을 택했다. 녹색 차양이 그늘을 드리웠다. 덩치 큰 30대 중반 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풀어헤친 셔츠 사이로 가슴에 난 털이 보였다. 수염까지 기른 모습이 산적 같았다. 칠오를 보고 알은체했다.


“정기자님, 여기 샌드위치도 있지만 감자튀김이 더 맛있어요. 그걸로 할까요?”

칠오가 말했다. 동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도 한잔 하실래요? 업무시간이긴 한데, 참! 아까 충격받으셔서 술은 안 되겠다.”


“한잔 하겠습니다!”

동희가 말했다.


“하우스 맥주 두 잔 하고 베이컨 푸틴 좀 주세요.”

과묵한 산적이 씽긋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 집 푸틴, 기자님도 좋아하실걸요.”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에서 공원이 잘 보였다. 9월 한낮의 햇살이 아직 뜨거웠다. 그늘은 선선했다. 오전에 일어난 일들이 벌써 먼 과거처럼 바래는 것 같았다. 산적이 맥주 두 잔을 내왔다. 맥주의 첫 잔은 언제나 시원했다. 누런 냅킨으로 입을 닦을 때 칠오가 입을 열었다.


“원래부터 개를 무서워하세요?”


동희는 어릴 때 마당 있는 집에서 자랐다. 그 집에는 하얀 진돗개도 살았다. 진도가 고향인 아빠 친구가 선물했다. 그 개가 3살가량 되었을 때 새끼를 몇 마리 낳았다. 동희는 새끼 중 유독 한 녀석을 좋아했다. 아이스크림 이름을 따 비얀코라 불렀다. 강아지들이 젖을 뗐을 때, 엄마와 외삼촌은 비얀코만 두고 어미개와 강아지들을 입양 보냈다. 동희는 모든 애정을 비얀코에게 쏟았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비얀코와 함께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비얀코가 어느 겨울 아침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앙증맞은 입에서 토해낸 빨간 피가 하얀 눈밭에 뿌려져 있었다. 몸부림 탓에 몸에도 빨간 얼룩이 묻어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으로 며칠을 앓아누웠다. 잠이 들면 숨이 막힐 것 같아 깨어났다. 어지러운 악몽을 꾸고 잠꼬대를 심하게 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아빠와 함께 비얀코를 쫓았다. 비얀코는 재빨리 도로로 뛰어들었다. 차들이 씽씽 달렸다. 차 한 대가 작은 흰둥이를 치고 가버렸다. 튕겨 오른 비얀코를 받으려 했다. 품에 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다. 하지만 비얀코는 붉은 칠을 한 채 저 멀리 날아갔다. 뒤따라오던 아빠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잠에서 깼을 때 베개가 눈물로 젖어있었다. 아빠가 죽고 2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그 꿈을 끝으로 악몽은 없었다. 대신 개가 무서워졌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개를 볼 때 해부학 사진 보는 것 같았다. 마음 불편한 것이 점점 공포심으로 바뀌었다. 개 사진만 봐도 식은땀이 났다. 특히 개가 흰색이라면 질겁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개 공포가 줄었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때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공황장애였다. 한때는 증상이 심해 몇 달 동안 약을 먹은 적도 있었다. 20대 중반까지 간간이 이어지던 공황발작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직까지 귀여운 강아지조차 쓰다듬지는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은 남아있다. 그런 자신이 완벽하다고? 동희는 머쓱했다.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가 쥐약을 먹고 죽었어요. 그 뒤로 웬일인지 개만 보면 무서웠어요. 이젠 거의 괜찮아졌는데, 오늘처럼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저도 모르게 놀란 것 같습니다.”

동희가 말했다.

 

“베이컨 푸틴 나왔습니다!”

산적이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갈색 소스가 뿌려져 있었고 그 위에 치즈 조각들과 작은 베이컨 알갱이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칠오는 동희의 빈 잔을 가리키며 맥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두 번째 맥주는 맛이 달랐다. 황금색 액체 속에서 숨 참기 놀이를 하던 공기방울들이 하나 둘 솟아오르고 잔에 맺혀있던 굵은 물방울들은 아래로 흘러내렸다. 하얀 거품이 조금씩 꺼졌다.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평일 낮부터 마시는 맥주가, 포만감을 줄 것 같은 푸틴이, 선선한 바람과 뒤섞여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게 했다.


“저희 대표가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해요. 오늘 인터뷰도 부실했죠?”

칠오가 말했다. 동희는 말없이 칠오를 바라보았다. 점심을 먹으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야외테이블은 모두 찼다.


“나오미 대표와는 대학 동문이죠. 우리 둘은 학교를 다니면서 작은 회사를 차렸어요. 나오미 외조부께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창업하고 처음 만든 것이 퍼펙트 드로잉 헬멧이라는 제품입니다.”

칠오 말에 동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A라는 사람이 코끼리를 생각할 때 발생하는 뇌파와 B라는 사람이 토끼보다 코끼리를 생각할 때 발생하는 뇌파가 더 비슷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마다 뇌파 형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매운 고추를 먹어도 아주 맵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별로 맵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맵다고 느끼는 건 같죠. 만일 그렇다면 ‘뇌파를 분석해서 사람 생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가정에서 출발했어요. 가능한 많은 많은 사람들의 뇌파를 수집했지요. 코끼리를 생각할 때 뇌파, 토끼를 생각할 때, 사자를 생각할 때, 차가움을 느낄 때, 따뜻함을 느낄 때, 아름다움과 사랑, 증오의 뇌파까지. 이렇게 다양하게 수집된 뇌파를 저희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데이터베이스 화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희들이 옳았어요.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면 뇌파 패턴도 비슷하다는 걸요.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게 퍼펙트 드로잉 헬멧이에요. 그런데, 뜻밖에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요. 헬멧을 사용한 아이들이 전보다 더 차분해졌다는 겁니다!”

칠오 눈이 조금 커졌다.


“헬멧과 아이들 뇌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상호작용이 있었겠죠. 그 인과관계를 찾던 중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는데, ‘뇌파를 제어해 사람의 심리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피실험자에게 불쾌한 장면이나 슬픈 장면을 보여주고 전기 장치를 통해 기쁠 때 방출되는 뇌파가 생기도록 유도한다면? 그 반대 경우도 시도해봤고요. 수 차례 한 실험 결과는 거의 동일했어요. 뇌파를 변화시켜 사람의 심리상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과 뇌파가 안정될 때 모든 호르몬 분비까지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요. 그때부터 저희 칩 개발이 급 물살을 탔죠.”

동희는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한 퍼펙트 드로잉 헬멧을 대체할 새로운 제품도 구상했는데요. 저희들은 소통 헬멧이라 불러요. 헬멧을 쓴 사람들끼리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거죠.”


그런 제품을 누가 사용하려 할까요? 완성은 하셨습니까?”

동희가 말했다.


“프로토타입은 이미 나왔어요. 정기자님께선 웃으시지만, 의외로 그런 제품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의식은 있지만 입조차 벙끗할 수 없는 중증 마비 환자라든지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 또 언어가 다른 사람들 간의 소통, 심지어 일상을 사는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오해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거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칩 관련 사건들에 대한 드림캐리어社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동희는 칩 부작용 쪽에 관심이 더 많았다. 칠오는 목이 타는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푸틴을 입에 넣고 시선을 공원 쪽으로 옮겼다.


“얼마 전, 회사 서버에 문제가 있었어요.”

한동안 공원만 바라보던 칠오가 입을 열었다.


“소통 헬멧은 텔레파시처럼 말없이 서로의 생각을 읽는 거죠.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적절한 알고리즘이 필요해요. 소통 헬멧에 들어갈 프로그램의 베타 버전을 완성하고 여러 테스트를 했어요. 그리고…….”

칠오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저는 호기심에 그 프로그램을 칩에 적용했어요. 초기 칩은 아무 반응이 없는데, 칩 2는 놀랍게도 프로그램과 반응하는 거예요! 칩 2는 기존 칩에 비해 더 민감한 전자기파 반응을 해요. 보다 섬세한 뇌파 조율을 위해 그렇게 설계했죠. 그것 때문인지 전파간섭이 발생한 것 같아요. 칩 2에 소통 헬멧 프로그램을 입력했을 때 사용자끼리 생각과 감정이 공유되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미약하기는 했지만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그런데, 어느 날 출근했을 때,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서버를 곧장 점검해봤죠. 그런데, 그게 말이죠, 그동안 개발해온 프로그램 핵심 알고리즘 일부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이 보이는 거예요. 그것도 상당히 오래전에 그렇게 되었다는 걸요. 그때는 칩 2 부작용이 보고도 되기 전이거든요.”

이번엔 동희 눈이 커졌다.


아시다시피 저희 회사 전직 연구원까지 희생되었다는 건...... 후! 저희 내부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요. 어쨌든, 이 프로그램이 유출되어 진짜로 칩 2에 입력된다면, 칩 2가 일으킨 부작용도 그것 때문이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이 프로그램을 악용하면 칩 2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 생각과 감정을 훔쳐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주입할 수도 있어요.”

놀라운 이야기였다. 칠오의 말대로 누군가가 프로그램을 해킹해 칩 2 사용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면? 그래서 칩 2 사용자들이 환청을 듣고 환각을 보고 다른 이의 생각을 경험한 것일까? 많은 것이 설명되지만 단정할 순 없다.


‘CIA와 국정원은 뇌파를 제어해 인간을 조종하는 무기의 사용을 멈춰라! 나의 친구들을 석방하라!

언젠가 서울역에서 본 잘 차려입은 남자가 들고 있던 피켓 문구가 생각났다. 세상이 여태껏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서운 곳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세상이라는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바지직거릴 것 같았다. 날씨가 점점 더워졌다. 낮술 때문인지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빈 잔을 바라보았다. 음식점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웃으며 입을 벌리고 음식을 오물거렸다. 저 사람들은 자신들 생각을 누군가 훔쳐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렇든 저렇든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것이다. 사랑도 나눌 것이다. 지금처럼 닿을 수 없는 하늘을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 행복해할 것이다. 새삼 자신이 마시고 있던 것이 알코올임을 깨달았다. 술은 이럴 때 마시는 것 아닐까? 세상이 단순하게 보이도록, 만만하게 보이도록, 그래서 살아갈 용기를 얻도록.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지나칠 정도로 뻗어나간 상상의 줄기를 쳐내기 위해 세 번째 맥주는 자신이 직접 고르려 했다. 마침 땀범벅이 된 산적이 나타났다. 샌드위치 2개가 담긴 접시를 들고 있었다.


“요건 서비스!”

역시 풍요로운 계절이었다. 그때 동희 휴대폰이 울렸다. 편집장이었다. 서둘러 사무실로 복귀하라고 했다. 주섬주섬 떠날 채비를 했다.


“자칫 잘못하면 저희들만 억울한 희생양이 되는 거예요. 그 사이 누군가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겠죠. 그게 뭐가 됐든지 간에요.”

술기운이 걷히며 사무실로 향하는 내내 칠오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가장 충격적인 말은 유출된 프로그램의 종착지가 정부기관 중 하나로 추정된다는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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