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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Dec 31.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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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희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편집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벽에 걸린 TV 화면을 보고 있었다. 동희를 본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TV 화면으로 돌렸다.


화면은 뉴스속보라는 타이틀과 함께 어느 거리 폐쇄회로 영상을 보내고 있었다. 골목에 고가의 외제차가 즐비했다. 2층 카페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카페 창문이 열렸다. 사내 한 명이 여성 한 명의 목을 조르고 흉기로 위협했다. 목격자들이 아래에서 찍은 화면으로 영상이 바뀌었다. 인질범이 외치는 소리, 주변 사람들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인질 가슴이 격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납치범은 가끔 흉기를 허공에 휘둘렀다. 경찰관 2명이 구경꾼들을 멀리 밀어냈다. 그 틈에 중무장한 경찰특공대가 들어오고 2층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확성기를 입에 댄 경찰관이 인질범을 향해 투항을 종용했다. 근 1시간 가까이 대치하던 상황이 의외로 쉽게 끝났다. 경찰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납치범은 머리를 흔들고 흰 연기를 피워 올렸다. 손까지 떨더니 들고 있던 흉기를 떨어뜨렸다. 그새를 놓칠세라 고무탄 한 발이 날아와 인질범 가슴을 때렸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인질범이 고무탄을 맞고 쓰러지며 머리를 다친 것만 빼.


“또 사건이 터졌어!”

편집장이 동희에게 말했다.


“오는 길에 택시 안 라디오로 들었습니다. 칩 2와 관련 있을까요?”


“수사결과를 지켜봐야지.”

TV 화면은 동일한 영상을 계속 내보냈다. 사무실 사람들이 하나 둘 TV 앞을 떠났다. 편집장이 눈짓으로 동희를 불렀다. 잠시 뒤 두 사람은 편집장실에 있었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동희는 서 있고 편집장은 앉아있었다. 동희는 자신을 외면한 채 하얀 벽만 보는 편집장을 보고만 있었다. 편집장이 던진 빨간 공이 벽을 맞고 튕겨 나왔다. ‘탁’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그렇게 몇 번을 던졌다 잡았다 했다. 공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마지막은 던지자마자 돌아온 공을 꽉 움켜쥐고 책상 위에 내려쳤다. ‘쾅!’ 또 다른 소리가 동희를 불안하게 했다.


“별일 없었어?”

편집장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네?”


“인터뷰 잘했고?”

평소와 다르게 말에 짜증이 묻어있었다.


“아! 인터뷰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어요.”


“그래?”

편집장 눈빛이 빛났다.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 빨리 복귀하라고 하셔서……”


“방금 뉴스속보 봤잖아!”


“그것 때문인가요? 그전에 복귀하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냐, 아냐! 사건이 터졌으니 빨리 오라고 한 거지.”

편집장 말이 석연치 않았지만 별 의미는 두지 않았다.


“혹시 인터뷰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걱정하시는 건가요?”


“아냐, 아냐, 아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나가서 일 봐!”

동희는 얼떨떨함을 안고 편집장실을 나섰다. 탕비실로 사용하는 작은 방 앞을 지날 때였다. 평소 취재 명분으로 외부로 다니던 선배 하나가 이 날은 사무실로 출근했다. 커피를 내리며 입사 동기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동희가 이번 심층취재 맡았다며? 하! 아무리 그래도……”

동희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런 걸 심층취재라고 했어!’ 선배들이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렵게 얻어낸 인터뷰야, 실수하면 안 돼!”

전날 밤 편집장 당부도 한몫했다. 어떤 언론사도 하지 못한 취재를 맡았다는 자부심이 이젠 자신을 괴롭히는 부담감이 되었다. 부실한 취재는 웃음거리밖에 줄 수 없다. 편집장을 포함한 모든 사무실 사람이 적이 된 기분이었다. 장난이 아니라 것이 그제야 실감 났다. 막막함이 밀려왔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뭐!’

자신이 불량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을 대하는 이런 태도도 그가 생각하는 일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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