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큐멘투니스트 Dec 31.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17

17


최근 몇 달 사이 재발한 나오미의 대인기피증. 그녀의 대인기피 대상 1호는 놀랍게도 외조부, 김성철 회장이었다. 누구보다 나오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였다. 유일한 혈육인 그녀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왔다. 김 회장이 아니었던들 드림캐리어社는 말 그대로 ‘드림’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오미는 외조부 만나는 것이 싫었다. 물론 외조부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외조부를 대할 때 느껴지는 숨 막힘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외조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노심초사하기는 김성철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뿐인 손녀에게 예전 증상이 다시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다행히 김 회장은 진작에 소식통을 마련해 두었다. 언제나 어린애로 여기지는 외손녀가 사업규모를 키우려 할 때, 몰래 드림캐리어社 직원 한 명을 자신의 정보원으로 삼았다. 드림캐리어社의 실질 투자자인 김 회장은 그 정보원으로부터 회사 운영과 외손녀에 관한 시시콜콜한 보고를 받았다. 정보원은 언제나 야상을 입고 나타났다. 그와 만나는 장소는 다양했다. 카페에서, 작은 주점에서, 어떤 날은 고급 요정에서 두 사람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요즘 우리 나오미가 많이 힘들어하지?”

그날도 김 회장은 나오미 안부부터 물었다. 야상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 야상의 이야기를 들은 김 회장은 안도했다. 이날 야상은 뜻밖의 요청도 했다.


“어르신! 지난번에 김영주 의원과 친분이 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야권의 대선후보 말씀입니다.”


“김영주?”


“혹시 그분을 한번 뵐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칩 2 관련 사건으로부터 드림캐리어社도 나름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쯤 뒤 종로의 한 요정에서 김 회장과 야상은 김영주 의원을 만났다. 김 회장은 김영주와 오랜 친구처럼 허물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 김영주는 야상과도 격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남이 무르익었을 때 김영주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야상이 뒤따랐다. 조용한 요정 화장실 소변기 앞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야상이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야상의 언어에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도 있었다. 김 회장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김영주에게 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상관을 찾아 화장실로 온 김영주의 보좌관이 두 사람 뒷모습을 보았다. 화장실 대담은 끝났다. 마지막으로 야상은 손을 입 근처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분명 야당이 승기를 잡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다음 대선에선 의원님이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어느 누구도 반대 못할 것입니다.”


지역구에서만 5선을 달성한 정치 달인 김영주의 표정관리가 그때처럼 어눌한 적은 없었다. 볼일은 진작에 끝났지만 노르스름한 액체를 뿜던 신체 돌기를 그때까지 쥐고 있었다. 감추려 했던 기쁨의 빛이 불콰한 얼굴로 스며 나왔다. 보좌관과 눈이 마주친 김영주는 그제야 통통한 그것을 몇 번 흔들어 바지 틈으로 집어넣었다.


술에 취하고, 민망한 생물학적 부위를 한참이나 드러내 놓고 있었지만 자신의 상관은 거룩한 성인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가 뿜는 기쁨의 빛이 어찌나 밝던지 눈까지 멀 지경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 꼬뮤니까시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